Sakura fever!
벌써 다음주면 2월도 끝나고 3월이 시작된다. 3월이라고 해서 바로 날씨 풀리고 봄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그 숫자가 주는 상징적인 기대감은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이 길고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설레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있는 나라 치고 봄기운에 들뜨지 않는 나라도 없지마는, 이 곳 일본은 좀 더 유별나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봄이 온다는 것은 곧 사쿠라가 필 것이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직 2월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기선 발렌타인데이가 지나자마자 벌써부터 사쿠라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슈크림 전문점 '비어드 파파'에서는 봄맞이 기념으로 딸기생크림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외 각종 디저트 가게들에서도 3월부터 시작되는 딸기나 사쿠라 마쯔리에 많은 관심과 이용 바란다고 홍보를 시작했다. 또한 스타벅스에서는 2011년도 사쿠라 제품들을 출시했고, MUJI에서도 식품매장 가장 중요한 자리에 사쿠라맛 바움쿠헨, 마시멜로, 차, 쿠키 등의 제품들을 가득 진열해 놓았다. 3월부터 시작되는 봄 한정 메뉴들은 차차 먹어보기로 하고, 나도 이 분위기에 함께 휩쓸려버려 우선은 muji와 스타벅스 두 군데의 사쿠라 제품들을 몇 개 집어와 보았다.
MUJI에서 몇 개 집어온 것들. 사쿠라롤케익, 사쿠라쿠키, 사쿠라&호우지차 초콜릿. 마시멜로도 색이 너무 예뻐서 집어오고도 싶었지만 원래 마시멜로만 생으로 집어먹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관뒀다. (역시 마시멜로라면 핫초콜릿에 녹여먹는 거나 캠프파이어에 구워먹는 게 진리!)
사쿠라와 호우지차 초콜렛. 호우지차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녹차를 좀 더 볶아서 갈색 빛이 나는, 좀 더 진한 맛을 내는 차이다. 나름 색깔은 엷은 분홍색 카키색 같이 붙어 있어서 예쁜데 먹어보면 솔직히... 그냥 화이트 초콜릿 맛이다. 따로따로 층을 분리해서 먹어보면 원재료의 맛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던데, 그냥 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 그냥 화이트 초콜릿. 뭐, 그냥 이뻐서 산거지 맛까지 엄청 기대하고 산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것은 사쿠라 쿠키의 포장을 뜯고서 찍어본 사진.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고 말린 꽃이 딱 하나만 놓여 있는 것이 더욱 우아하다.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 그나저나, 쿠키에서조차 여백의 미 운운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탓...이겠지....)
그리고 사이에는 분홍색 크림이 가득 샌드되어 있다. 바삭거리고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 엷게 우려낸 홍차에 곁들이기 딱이다 싶은 과자.
사쿠라롤케이크. 분홍색에 하얀색 크림이 같이 돌돌 말려 있는 것이 너무 예쁘다. 흰 접시에 놓았으면 빵의 여리여리한 분홍색이 한층 더 살아났을텐데.... 혼자 임시로 꾸려나가는 살림이라 흰 접시가 없어서 아쉽게 되었다. 맛은 그냥 누구나 기대할 수 있을 법한 체리맛.
단체샷엔 없지만 그보다 좀 더 전에 사서 마셔본 사쿠라 녹차. 분홍색 라벨이 이뻐서 사 마셔 보았다. 설탕을 탄 것도 아닌데 끝맛이 달달하다. 하지만 역시 그냥 녹차만은 못한 맛. 이 것 역시 한 번 사 마셔 본 것으로 족하련다...
그 다음으로는 스타벅스의 2011 Sakura series. 봄학기에 일본으로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매년 판매되는 스타벅스의 사쿠라 제품이었으니, 내가 얼마나 들떠서 매장을 찾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15일에 출시된단 말을 듣고는 학원 끝나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당장 가까운 스타벅스부터 달려갔으니. 하나같이 다들 너무 예뻐서 '매장에 있는 것 하나씩 다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돈도 없고 나중에 고베로 옮길 때도 짐이 되고. 근데 아쉬운 대로 집어온 거라고 하기엔 또 너무 많이 샀다. 휴. 이 날 정말 이것들에만 합쳐서 5천엔 정도를 썼으니. 긴축정책이 시급하구나.
우선은 컵 종류들. 왼쪽에서부터 순서대로 water bottle, cup, tumbler(small).
마지막으로 저 컵들만 계산하려다 계산대 앞에 놓여있는 걸 보고 집어온 사쿠라 마카롱과 머랭쿠키. 분홍색인 것도 예쁘지만 무엇보다도 저 포장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입 안 가득 체리맛이 번지는 것이 기분 좋아지는. 하지만 계속 먹으면 물릴 만한 맛이다. (양이 적어서 다행이다)
그 외에 사쿠라 프라푸치노, 라떼, 쉬폰케이크, 치즈케이크, 데니쉬, 스콘 등이 더 있다. 조만간 저 텀블러 사면서 안에 들어있던 1 free drink coupon으로 사쿠라 음료 한 잔에 사쿠라 케익 하나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그 사진들은 나중에 먹게 되면 소감과 함께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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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사족이지만, 요즘 어째 블로그가 '타베로그化'되어가는 기분이다.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적어내려간다기 보다는, 직접 실물로 접한 것들에 대한 소감을 구구절절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달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루하루 손에 만져지는 것들이 하나같이 새롭게만 느껴지는 것을. 게다가 이 곳에서 생활하는 것도 앞으로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더더욱 이 곳에 실존하는 감각들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을. 매일을 그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면서 그것들을 먹어보고, 만져보고, 보고, 듣고 느끼느라고 형이상학적 물음은 조금 던져두게 되는 걸 어찌하겠는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뭔지에 대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등 좀 더 본질적인 질문에 근접해 가다가도 어짜피 한국 돌아가기 전까진 모를 것이고, 아직 고베에서의 생활도 시작하지 않은 지금부터 붙잡고 고민해 봤자 큰 수확이 없을 거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은, 적어도 고베로 가서 본격적인 교환 생활을 시작하기 전 까지는, 그저 이렇게 맘 편히 보내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분명 이렇게 큰 걱정없이, 숨막히는 치열한 울타리 안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유롭게 보낼 날도 앞으로 거의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큰 걱정 없이 혼자 생활하는 시간들 또한, 어떤 면에선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성장하게끔 할 요소가 될테니까 말이다. live a li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