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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장례식을 다녀왔다.
천안에 내려가자마자 소식을 들었고,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갔었기에 장례식에 입고 갈 만한 검은옷이 있을 리 없었다.
출발 전에 대충 집 근처 백화점에서 검은 바지를 사고,
앞으로 더워질 테니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사서 자켓 안에 입고 갔는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온종일 추위에 떨었다.
작은할아버지께서는 88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오래 사셨고, 고통 없이 가셨다면서 다들 호상이라고 했다.
작은할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진지는 꽤 되었고, 그래서 최근 몇년 동안 뵌 기억이 없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때 뵈었던 작은할아버지는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나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각각 내가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때 돌아가셨다.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서, 철이 든 지금 기억을 최대한 긁어모아도 떠오르는 것이 몇 없다.
외할아버지의 경우 외가에 갔던 적이 더 많기에 보다 기억이 많지만,
역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었다.
실감이 나질 않고,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가 와닿질 않으니, 눈물 역시 나질 않았는데
장례식장에서 나 빼고 다들 울고 있길래 난 나쁜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들의 죽음보다도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친구 동생의 죽음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5학년 때 백혈병으로 죽었던 아이.
골수이식 수술날짜도 잡혔었고, 희망을 가지고 있던 차에
감기에 걸려서 합병증으로 죽었었다.
아직도 머리를 밀고 모자를 쓰고 있던 그 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이름까지도 생각난다.
텔레토비하면 그 애부터 먼저 떠오른다.
보라돌이를 좋아했었고, 화장할 때 보라돌이 인형도 같이 넣었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이 드신 분들의 죽음보다도, 나보다 어린 애가 죽었다는 것이 더 와닿았던 걸까.
철이 좀 든 이후 처음으로 죽음이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이다.
한 학년 위의 선배이자 당시 학교 부회장이었던 언니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폭행범에게 강간을 당하고 목에 칼을 찔려 죽는 일이 발생했었다.
당시 온 학교가 뒤집혔었고, 천안시 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크게 보도되었었다.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랑 친한 언니여서 종종 이야기를 들었었고,
규모가 그리 큰 학교는 아니었어서 얼굴도 꽤 익은 편이었다.
나랑 비슷한 생활반경 내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도 끔찍한 일로 죽었다는 것이, 아니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당시 추모의 차원에서 그 선배의 미니홈피에 들어갔을 때
사진첩에 '웨딩'폴더가 있고, 새하얀 웨딩드레스 사진으로 빼곡히 차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토록 꿈꾸던 웨딩드레스도 입어보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당한 선배가 불쌍했다.
내가 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 다음으로는 대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동창이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다.
역시 직접 아는 사이였지만, 같은 통학버스에 타고,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로의 존재는 아주 잘 아는 사이였었다. 겹치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고.
재수를 해서 이제서야 '고생 끝, 행복 시작' 할 수 있던 때였는데,
미처 다 피우지도 못하고 가버렸다.
그 애가 병원생활을 하면서 '나도 남들처럼 밖에서 햇빛을 즐기며 맘껏 놀고 싶다'라고 했댄다.
그 말을 전해듣는 순간 내가 가진 일상의 고민들이 어찌나 사치스럽게 느껴지던지.
과제가 하기 싫고, 살이 찌는 느낌이 싫고,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 등이 다.
그 애가 그렇게도 간절히 더 살고싶어했던 날들을
가치없이, 꾸역꾸역 보내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졌었다.
가장 많이 울었고, 가장 충격적이었고, 가장 와닿았던 것은 둘째이모의 죽음인데-
이건 나중에도 할 말이 많을테니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어제 장례식장에 몇시간이고 앉아있다 보니 이런 기억들이 다 떠오르더라.
그래서 하루가 지난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줄줄 써내려가고 있고.
정돈되지 않은 글이라도 한번 쏟아내고 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지니까.
종교도 없고, 딱히 사후세계란 것도 믿지 않지만,
누군가를 보내고 나면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빌게 된다.
부디 좋은 곳에 갔기를 - 하고.
편한 얼굴로 가셨다고 하니,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