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2012. 2. 11. 16:29


여행의 시간순서 다 무시하고, 제목 그대로 프라하가 나에게 똥을 준 이야기는.....
아직 기억이 선명한 지금 적어두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프라하는 가장 기대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수많은 영화들과 소설들의 배경이 되었고, 야경이 아름답다고 유명한 곳.
하지만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루트로 여행 하기 좋아하는 내게
가장 관광객들이 많을 프라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가는 경우에는 실망을 한다지만,
기대를 별로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이러한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다.

좋지 않은 예감이라는 불안함을 처음으로 감지했던 것은 빈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반복되는 신용카드 결제 오류로 미리 예매를 하지 못했었기에 불안한 마음에
버스 도착시간 1시간 전부터 정류장에 도착해 있기로 한 것이 잘못이었다.
처음에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유원지의 관람차가 선명하게 보이는 정류장이어서
나름 사진도 찍고 빈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감상에 젖어있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에 그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땅히 들어가 있을 곳도 없어서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더 늦게 도착하기까지 했다......
눈 앞에 보이는 버스 앞에 빨리 들어가서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티켓 비예매자는 맨 마지막에 탑승...
게다가 간단한 영어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버스 운전사와
내가 돈을 주었단 사실조차 한번에 기억하지 못한 승무원 때문에 탑승시간 지연.

그래도 버스여행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중간지점인 체코 브루노까지는.
브루노에서부 탑승해 내 옆에 앉게 된 체코 아저씨의 암내 때문에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고
아이폰이나 넷북으로는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없었다. 뭐야 스튜던트 에이전시... 와이파이 된다며!
그래도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숙소 도착해서 짐 풀고 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버스에 탄 지 다섯시간이 지나 도착한 프라하 플로렌츠 버스터미널.
아직 체코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는 내게 터미널의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게다가 불친절한 사람들.....
지하철 어디서 타냐고 물어도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설명도 불충분해서
결국 터미널 주변을 빙빙 돌다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했다.
역 안의 자그마한 환전소도 겨우 찾았지만 역 안은 환율이 좋지 않다고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메트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만 환전했다. 여기가 1유로에 24코룬, 동전은 20코룬.

지하철 시설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환승도 용이한 편이었고.
문제는 지하철 역을 나와서부터였다.
차도도, 인도도 울퉁불퉁한 돌길이어서 캐리어 여행자에겐 최악이였던 길.
우장창창 쿠르릉 쾅쾅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한 10분쯤 끌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자 혼자 여행인데다 프라하는 소매치기 범죄가 빈번하다는 말을 들어서
호스텔부커스에서 위치 하나만을 보고 골랐던 숙소는 시설이 낡고 불편했다.
인터넷도 로비에서만 쓸 수 있었고 그 로비마저도 좁았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한참을 짐을 낑낑 들고 올라가서 체크인.
체크인할때도 인터넷상으로는 유로로 낼 수 있다고 했는데 직원이 자꾸 코룬으로 달라는 거다.
그래서 인쇄한 종이 내밀면서 막 뭐라고 했더니 결국엔 받아준다. 역시 사람은 알고 봐야해.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을 한 후에는 아이폰으로 급히 주변 식당을 찾고자 와이파이에 접속했는데
자꾸 연결을 하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한 번 껐다 켰는데........
아니 너 뭐야.... 복원모드가 뜨는거다.
아니 도대체 왜???? 왜??? 내가 뭘 잘못한거야 아이폰 이 망할 .............
아이클라우드나 아이튠즈로 여행중에 백업도 안했었는데................
완전 패닉해서 아이튠즈 다운받으려고 넷북을 켰는데 .....
넷북도 인터넷에 연결이 안ㅋ돼ㅋ
영원히 복원하지 못할 여행중의 문자들, 메모들, 사진들, 동영상들이 스쳐지나가고
너무 당황스럽고 갑갑하니까 진짜 주저앉고 싶어지더라.....
이 모든 것이 숙소 와이파이 때문인 것만 같고.... 해서 숙소를 옮길 수 있겠냐고 했더니
오후 2시가 지나서 총 4박 중 앞의 2박은 취소가 안된단다....
숙소 인터넷 모뎀 버튼을 여러번 껐다 켠 후에 겨우 접속한 인터넷으로
도착한 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이튠즈 다운받고 ..... 아이폰 복원하고....
망할 아이튠즈.... 복원하는데 인터넷 속도가 문제인가 한시간도 넘게 걸렸다.
결국 오후에 적당히 어둑해지는 야경 보고 맛있는 저녁 먹으려 했던 계획도 무산,
점심도 버스에서 슈퍼 샌드위치로 부실하게 때웠는데 비자발적으로 굶어야 했다.
다시 제 기능을 찾은 아이폰은 새로 구입한 것 같은 상태로 있었고........
나는 망연자실함에 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돈도 환전하고 먹을 것도 사야겠다 싶어서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거리로 나갔다.
거리를 걷다가 Western Union을 발견했는데 여기서 환전하면 적어도 평균 정도의 환율은 적용받는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환율 따지기도 귀찮고 피곤했던 나는 50유로짜리 지폐를 가지고 가서 환전했다.
근데 잉... 생각보다 너무 적은 코룬을 받았다....... 표에 써있는 금액이랑 다른데....
이쉑희...... 1유로에 겨우 17유로밖에 안쳐준거다......
버스터미널에서도 24유로는 쳐줬다 이놈아......................
나중에는 관광객들 가장 몰라는 거리에서도 1유로=24코룬은 쳐준다는 것을 알고 정말 분노.....아......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피곤하고 아이폰 때문에 공황상태였기 때문에 비교하고 따질 겨를도 없었다.
맛집들과 맛집들의 위치라도 좀 조사해 올 것을,
여행하는 내내 무계획이 계획이란 신조로 한 도시에서의 계획은 도착해서 바로바로 세우고
심지어 어느 도시에 언제 갈지도 한국에서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한 도시에 도착하면 다음 도시 일정 잡고 ... 해왔던 나인데 도착한 당일밤 맛집은 무슨...
그래서 그냥 숙소 근처에 있던 한 조각피자+케밥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자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종업원들과 그 친구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웃는다.
뭐 먹을거냐고 물어보는 종업원들의 표정이 닝글닝글.
이 때도 기분나빴는데... 메뉴판 좀 보다가 마침 이 나라 요리 중 하나인 굴라쉬가 있길래 주문했더니
자기들끼리 완전 웃음보가 터져서 웃어대는거다.. 대놓고.....
기분 확 상하고 정말 주문해서 나온 음식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났었지만
이젠 다 필요없고 빨리 먹어치운 다음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후딱 먹고 자리를 비웠다.

동양인 여자 혼자 여행하다보면 항상 좋은 대접만 받진 못하지만....
체코는 정말 최악이었다.....
주문도 늦게 받고, 그지같은 서비스에 팁은 또 의무적으로 줘야 하고,
운좋게 나는 당하지 않았지만 시키지도 않은 음식 주면서 바가지 씌운다고 하고......

그래도 다음날 기운내서 프라하 성 보러 구경을 나갔는데....
이건 뭐 너무 추워서 뇌가 얼 것 같고 관광이고 뭐고 너무 지쳐버리는 거다.
무엇보다도 프라하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너무 상업적이고, 어딜 가도 관광객들 투성이고 (이런 날씨에도!)
건물들이 하나같이 알록달록하고 예쁘긴 하지만
에버랜드느낌이 나기도 하고... 유럽 민속촌에 온 기분이기도 하고...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있는 것이 매우 인위적으로 다가오더라.
유독 맞는 도시가 있고 싫은 도시가 있다던데
내겐 프라하가 후자의 경우...
그래서 원래는 근교여행도 하루 하려고 느긋하게 4박을 잡았던 건데
그냥 프라하에서만 4박 5일을 꼬박 있었다...
오후 세시쯤 숙소 돌아와서는 한참을 쉬다가 저녁에 공연보러 다시 나가는 패턴을 반복.

그리고 최악의 사태가 프라하를 떠나기 전날 밤 발생했는데....
테이블에 얹어두었던 dslr 카메라를 떨어트리면서 조리개가 나간거다... 아.......................
여행에서 다 필요없고 가장 중요한 건 여권과 카메라인데.....
카드는 분실신고하면 되고 현금은 현지 계좌 없어도 송금받을 수 있는 서비스 있고...
프라하는 곧 떠나니 카메라를 맡길 수 없고 다음 행선지인 폴란드 크라쿠프에 니콘 서비스 센터가 있나 찾아봤더니
바르샤바에 딱 하나 있네......... 헐......
게다가 구글에 무수히 뜨는 니콘 폴란드 서비스에 대한 불만들.... 니콘 너네 뭐하는거야 폴란드에서!
한국가면 오육만원 정도 주고 금방 고칠텐데....... 남은 일정동안 그냥 무거운 짐덩어리가 되어버린 카메라....
진짜 ..... 카메라 조리개 나간 거 알고는 실성한 웃음이 나오더라. 헛헛헛 ...............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것을 꼽아보자면
여행 중 만나서 함께 밥먹고 공연볼 수 있었던 사람들
유명한 재즈바에서의 라이브 연주와 단돈 10유로 정도에 즐긴 Prague State Opera에서의 카르멘공연..(!)
그리고 맛있고 저렴한 맥주와 음식..... 끝......
근데 맛있고 저렴한 음식은 폴란드 와보니 또... 폴란드가 갑.......

암튼.... 프라하 정말 최악 최악 최악이었다
불편함과 불친절함과 상업성과 인공미...
내가 프라하 시민이었으면 자기 일상의 공간에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밀려오면서
도시를 상업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싫을 것 같지만..... 나도 괜히 불친절해질 것 같기도 하지만....
난 프라하 시민이 아니니까 기분 많이 상함.

아 이제 빨리 짐싸서 바르샤바 가야 하므로 프라하 욕은 여기서 그만해야지...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준생 이야기  (0) 2012.03.09
여행일지를  (0) 2012.02.25
ROFL  (0) 2012.02.09
.  (0) 2012.01.13
Shakespeare Sonnet 35  (0) 2012.01.08
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