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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이 더욱 많아진다. 과거의 경험들이 무작위로 떠오르고, 먼 미래에 대한 공상을 하다 상상력의 부족, 또는 부담감으로 이내 접기도 한다. 어떠한 장소에 갈때나 어떠한 음식을 먹을땐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그것들을 어떻게든 글의 형태를 빌어서라도 쏟아내고 싶다는 충동 역시 자주 느낀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온전히 정리하기는 어려운 법이라, 함부로 쏟아냈다간 마치 글을 쓰면 안되는 시간이라는 새벽 2시의 감상에 젖은 글이 되어버릴까 싶어 애써 그 충동을 억누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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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한달이란 일정의 반이나 파리에서 보내면서 5년 안에 다시 자의로 인해 방문할 일은 없을거라고 했었지.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머물며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았기 때문이었고, 항상 가봤던 곳보단 새로운 곳을 추구하는 나의 여행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그 도시에 발을 밟았다. 그것도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미국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 중 한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러고보니 그 친구랑 03년도에 몇번을 부둥켜안고 작별인사를 하며 10년 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그것도 미국이나 한국이 아닌 파리에서. 그 친구 역시 고등학교때 스페인어 이후 재미삼아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파리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게 참 알 수 없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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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지금 다니는 대학의 경제학부 입학을 꿈꾸면서, 대학교 4학년 1학기까지 괜히 남들보다 더 어려운 전공과목을 듣고 수학과 수업까지 들으면서 내가 졸업 직후 회사원이 될거라고도 역시 생각하지 못했었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가 되어 IMF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게 꽤 오랜기간 나의 꿈이 아니었던가. 그랬던 내가 8월 입사를 앞두고 있다. 2년 전의 나는 막연히 떠올렸던 미래이고, 1년 전부터의 나는 간절히 바래왔던 직장이지만, 그 이전의 나는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별별 나라들을 다 가면서도 미국만은 다시 가지 않았던 것도 곧 있으면 몇년씩 살며 공부할텐데 뭐하러 미리 또 가냐는 생각에서였는데. 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진작 미국을 한번이라도 다시 갔을걸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직장을 가지게 된 내 자신이 실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거의 유일하게 유지되어 온 내 꿈 하나는 충족시킬 수 있는 직장이라 나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꿈이 뭐냐고? 바로 '전세계를 누빌 수 있는 국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새로운 세계를 동경해왔고, 가보게 되길 간절히 바래왔었다. 잦은 이사나 전학, 해외유학을 한 아버지와 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중동까지 가본 어머니, 오대양 육대륙을 누비며 끊임없이 이국의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여준 큰이모, 어린 시절 해외 거주 경험 등이 영향을 미쳤겠지. 어린시절 나는 호돌이 시리즈를 읽고 지구촌 프로그램을 보며 언젠간 가고말거라고 다짐하기도 했고, 지구본을 끊임없이 돌려보며 발음하기도 어려운 나라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했었다. 말을 배우면서부터 기억에 없는 일본에서의 2년(나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기시절 일본에서 2년 살았다는 것을 알리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며 한국 외 다른 나라에 대한 존재를 익히고 자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경제학 박사 이후 교수가 아닌 IMF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도, 결국 경제학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국제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결과론적 말이고, 자기합리화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굳이 상경계가 재무직이나 경영지원이 아닌 해외영업을 지원하고, 굳이 제2외국어까지 하겠다고 비영어권 국가로 교환학생을 떠나고, 학회의 국제교류 세미나 팀장을 맡고, 남들 잘 가지 않는 곳이어도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면 주저하지 않고 여행을 떠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한 꿈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동기이자 유인요소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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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글쎄. 지금까진 그랬다 쳐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당장 눈앞의 미래도 제대로 점쳐보기 어려운데 감히 5년, 십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했던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직장을 꿈과 자아실현의 장소로 생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며 열심히 하다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시작해보련다. 어찌되었든 나의 선택이니까 책임지고 해보아야지. 똑같은 일이라도 그 일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얻어가는 것과 성과도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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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써서 비문도 많을거고(원래도 많지만 ㅠㅠㅠ) 횡설수설하고 있을거고.... 그냥 어렴풋이 이런 생각들을 했구나, 하고 읽어주세요 0_<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생각이 더욱 많아진다. 과거의 경험들이 무작위로 떠오르고, 먼 미래에 대한 공상을 하다 상상력의 부족, 또는 부담감으로 이내 접기도 한다. 어떠한 장소에 갈때나 어떠한 음식을 먹을땐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그것들을 어떻게든 글의 형태를 빌어서라도 쏟아내고 싶다는 충동 역시 자주 느낀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온전히 정리하기는 어려운 법이라, 함부로 쏟아냈다간 마치 글을 쓰면 안되는 시간이라는 새벽 2시의 감상에 젖은 글이 되어버릴까 싶어 애써 그 충동을 억누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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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한달이란 일정의 반이나 파리에서 보내면서 5년 안에 다시 자의로 인해 방문할 일은 없을거라고 했었지.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머물며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았기 때문이었고, 항상 가봤던 곳보단 새로운 곳을 추구하는 나의 여행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그 도시에 발을 밟았다. 그것도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미국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 중 한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러고보니 그 친구랑 03년도에 몇번을 부둥켜안고 작별인사를 하며 10년 뒤에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그것도 미국이나 한국이 아닌 파리에서. 그 친구 역시 고등학교때 스페인어 이후 재미삼아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파리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네 인생이라는게 참 알 수 없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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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지금 다니는 대학의 경제학부 입학을 꿈꾸면서, 대학교 4학년 1학기까지 괜히 남들보다 더 어려운 전공과목을 듣고 수학과 수업까지 들으면서 내가 졸업 직후 회사원이 될거라고도 역시 생각하지 못했었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가 되어 IMF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게 꽤 오랜기간 나의 꿈이 아니었던가. 그랬던 내가 8월 입사를 앞두고 있다. 2년 전의 나는 막연히 떠올렸던 미래이고, 1년 전부터의 나는 간절히 바래왔던 직장이지만, 그 이전의 나는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별별 나라들을 다 가면서도 미국만은 다시 가지 않았던 것도 곧 있으면 몇년씩 살며 공부할텐데 뭐하러 미리 또 가냐는 생각에서였는데. 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진작 미국을 한번이라도 다시 갔을걸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직장을 가지게 된 내 자신이 실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거의 유일하게 유지되어 온 내 꿈 하나는 충족시킬 수 있는 직장이라 나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꿈이 뭐냐고? 바로 '전세계를 누빌 수 있는 국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새로운 세계를 동경해왔고, 가보게 되길 간절히 바래왔었다. 잦은 이사나 전학, 해외유학을 한 아버지와 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중동까지 가본 어머니, 오대양 육대륙을 누비며 끊임없이 이국의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여준 큰이모, 어린 시절 해외 거주 경험 등이 영향을 미쳤겠지. 어린시절 나는 호돌이 시리즈를 읽고 지구촌 프로그램을 보며 언젠간 가고말거라고 다짐하기도 했고, 지구본을 끊임없이 돌려보며 발음하기도 어려운 나라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했었다. 말을 배우면서부터 기억에 없는 일본에서의 2년(나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내가 아기시절 일본에서 2년 살았다는 것을 알리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며 한국 외 다른 나라에 대한 존재를 익히고 자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경제학 박사 이후 교수가 아닌 IMF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도, 결국 경제학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국제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 지나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결과론적 말이고, 자기합리화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굳이 상경계가 재무직이나 경영지원이 아닌 해외영업을 지원하고, 굳이 제2외국어까지 하겠다고 비영어권 국가로 교환학생을 떠나고, 학회의 국제교류 세미나 팀장을 맡고, 남들 잘 가지 않는 곳이어도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면 주저하지 않고 여행을 떠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한 꿈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동기이자 유인요소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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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글쎄. 지금까진 그랬다 쳐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당장 눈앞의 미래도 제대로 점쳐보기 어려운데 감히 5년, 십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했던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직장을 꿈과 자아실현의 장소로 생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며 열심히 하다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시작해보련다. 어찌되었든 나의 선택이니까 책임지고 해보아야지. 똑같은 일이라도 그 일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얻어가는 것과 성과도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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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써서 비문도 많을거고(원래도 많지만 ㅠㅠㅠ) 횡설수설하고 있을거고.... 그냥 어렴풋이 이런 생각들을 했구나, 하고 읽어주세요 0_<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