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이 느낌 그대로 '필 받아서' 즉시 블로그에 담아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다짐에 그치고야 말았다. 돌아와서 바로 아파서 끙끙댔던 것도 있지만, 그것도 사실 수많은 핑계 중에 하나. 컴퓨터는 거의 매일 켜서 사용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쉽게 써지지가 않더라. 그토록 생생하고 즐거웠던 여행인데, 벌써 아득히 먼 옛날같이 느껴졌기에. 낮잠자는 짧은 시간동안 꾸었던, 꾸는 순간엔 달지만 깨고 나면 허무한, 그런 짧은 단꿈같이 느껴졌기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것은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굴러가는 일상이라는 것이 시시각각으로 만화경처럼 바뀌는 여행하고 같을 순 없다. 매순간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려고 돌아다녔던 여행의 나날과는 너무나도 다른, 두문불출하고 이불 덮고 누웠다 앉았다 하는 내 귀국 이후의 날들. 모든 것이 새롭고 충격적인 여행지의 풍경과는 달리, 가구의 배치며 방의 위치, 굴러다니는 물건들 하나하나가 내게 너무 익숙하기만 한 집구석. 이러니 내가 어찌 '감히' 글을 쓰겠다고 함부로 덤빌 수가 있었을까. 어찌 감히 이런 단조로운 일상 속의 내가 꿈같았던 여행에 대해 썰을 쉽게 풀 수 있었을까.
그래도 한 번 했던 약속은 지켜야겠다 싶어 어떻게든 블로그에 남겨두련다.
언제든 다시 꺼내보면서 여행에 대한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기 위해서,
블로그까지 찾아와주는 지인들에게 내 여행의 감동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와 같은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정볼 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제부터 적어나가련다. 백문이불어일견이라고 웬만하면 글보단 사진빨로 간결하게.
(실은 글솜씨가 많이 딸려서.)
그리고 환승 후 여섯시간이 넘는 꽤 갑갑했던 비행 끝에 도착한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내리자마자 후끈함과 습기가 나를 확 안는 느낌.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추위와 비행에서 벗어나 여행지에 도착한 느낌. 너무나도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서 길고 긴 입국수속 대기시간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수속을 마친 후에는 카오산로드로 가는 공항버스 티켓을 사서 버스에 올랐다. AE2 버스이고 요금은 150밧. 시내까지는 40분 정도의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동안 옆에 앉았던 (영어를 잘하던) 핀란드 아이와 애기도 하고, 이국적인 바깥 풍경도 구경하며 지루하지 않게 카오산까지 갔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카오산로드!
듣던 대로 없는 것이 없고, 잠들 줄을 몰랐던 거리.
태국인보다도 외국인들이 훨씬 더 많은. 특히 백인들의 수가 압도적인.
수많은 간판들 중에서 태국어 간판은 눈 비비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고 영어로 된 간판들 뿐인.
화려하고 세련된 맛은 없지만,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사람을 들썩거리게 하던 거리.
이 거리만으로 태국을, 방콕을 논할 수 없지만 방콕에 온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곳.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카오산에서 먹고 즐긴 것들, 카오산의 먹거리 퍼레이드
먼저 길거리표 팟타이.
그렇게 해서 먹어본 덜익은 망고는 색다른 경험. 콜라비랑 비슷한 맛이기도 하고.
상큼하다기보단 꼬소한 맛이랄까?
적당히 취기가 오른 채 노천카페의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저들은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을까. 저들에게 이곳은 여행의 시작일까, 중간지점일까, 마무리장소일까, 아니면 삶일까.
근데 의외로 혼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 몇시간만 지나면 숙소서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 다른 여행객들 만나 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혼자서 맥주들 들이키며 사람들 구경하고 있으니 살짝 외롭기도 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색다르고 이상한 새해 첫날이랄까. 주로 새해 첫날이면 가족들과 집에서 늦잠도 자고 같이 밥도 먹고 했던 것 같은데.
람부뜨리 로드의 밤 풍경. 복잡하고 환한 카오산에 비해 이곳은 분위기 있는 조명들 단 식당들과 바가 즐비해 보다 조용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너무 예쁘지 않은가?
이렇게 크루즈선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강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너무 좋았다.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야경을 만끽할 때의 그 기분이란. 외로움이 조금 가시면서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위의 네 사진들은 다시 숙소로 걸어오면서 찍은 파수만 요새의 사진들. 낮에도 보고 밤에도 봤지만 역시 조명 들어온 밤의 모습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각도마다, 프레임마다 보여주는 모습도 다양해서 사진찍을 맛 나고.
돌아다닌 것보다는 한껏 들떠있느라 소모한 힘이 커서인지, 이 정도 돌아다니고는 급 피곤함이 몰려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10바트짜리 동전 하나 넣고 트위터로 근황 전하고, 방에 돌아와 샤워하고 잠깐 눈 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문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그 쾅쾅거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나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 '강지 나야!'
그렇게 반년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난 우리. 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거에 비하면 변한 게 너무 없었다. 말투부터 웃음소리까지 너무 똑같았달까. 이 날 하루종일 내내 혼자서 있다보니 어찌나 더 보고싶고 함께하고 싶던지. 서로 너무 반가운 마음에 피곤함도,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함도 잊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재회를 기념하기 위해 너무나도 당연히 바로 옆의 편의점에 가서 맥주 두 병을 집어들었더니 세상에, 술을 안판다는 거다. 우릴 너무 어리게 본건가 싶어 여권 생일날짜까지 보여줬는데 알고보니 태국 법에 따라 밤 12시 부터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아니 뭐 그런 법이 어딨어! 하지만 어쩌겠는가. 태국에 왔으면 태국 법을 따라야지. 결국 우리는 맥주 대신 맹물을 함께 들이키며 내일 일정을 대충 얼버무리고 잠에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내일은 이렇게 침대에서 잘 수 없을 테니까. 잘 수 있을 때 편히 푹 자두자고 맥주 못마신 아쉬움을 애써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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