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의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고 방콕과는 달리 습기찬 날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제 널어둔 빨래는 거의 마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숙소에 남아 있던 수건으로 물을 있는 힘껏 최대한 빼낸 후, 비닐에 따로 넣어 챙겨두었다. 젖은 채로 퀴퀴해지면 안되는데.
그렇게 우리는 짐을 모두 싸서 챙긴 후 비장한(?) 각오로 숙소를 나섰다. 그렇다. 오늘은 바로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날. 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소이긴 했지만, 전에도 언급했듯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기 위해선 험한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좁고 험한 산길 드라이브가 바로 그것. 그리고 나와 친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좀 더 비장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경치가 훨씬 좋다는 오른쪽 자리를 사수해 사진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친구는 멀미가 심한 만큼 비교적 편한 편이라는 앞자리를 사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밴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우리는 2인 1조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한 명이 짐을 맡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잽싸게 자리를 잡자고 말이다.
늘 그래왔듯 예정된 시간보다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늦게 픽업차량이 우릴 터미널까지 태워주러 왔다. 근데 이 픽업차량으로 온 버스가 아주 가관이다. 버스의 낡은 정도와 맨 앞에 써있는 일본어로 대략 80년대에 일본에서 쓰이다 이 쪽으로 넘어온 것 같은 차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열악했다. 설마 이걸 타고 계속 루앙프라방까지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다 되었을 정도. 다행히도 버스는 우리를 여러 대의 미니밴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터미널로 추정되는 공터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거기서부터는 그냥 아무 미니밴이나 잡고 티켓을 보여주며 타면 된다. 우리의 2인 1조 플레이는 대성공적이여서, 각각 미니밴 맨 앞줄 왼쪽 창가와 가운데 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내가 고대했던 오른쪽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보니 오른쪽 자리의 특성상 보조의자에 앉게 되기 떄문에, 장기간 험한 길을 달릴 경우 머리받침이 없어 상당히 불편할 뻔했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 앉은 자만의 특권으로 왼쪽, 오른쪽 경치를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된 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길고긴 루앙프라방행(行)은 그야말로 '익스트림'했다. 차선도 없고, 포장상태도 좋지 않은 길이 끝없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산속마을 아이들도 튀어나오고, 물소떼도 튀어나오는 그런 길이었다. 여행지에서만은 매우 낙천적인 내가 다 긴장해서 저러다 어린 아이들이 차에 치이면 어쩌나, 이런 산 속 험한 길에서 저렇게까지 속력을 내도 되나 하고 걱정했을 정도.
하지만 덕분에 정말 색다른 라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평지도 전혀 없는 곳에 집들이 있는 걸 보며 신기해하고, 아이들이 갓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도 보고,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풀을 말려 지붕으로 얹고 진흙으로 벽을 바르는 전통 가옥들도 실컷 보고, 볕이 좋은 곳에 아낙들이 풀을 탁탁 치며 말리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하고, 무엇보다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산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결코 편한 여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라오스를 여행하는 이라면 꼭 산길을 버스로 이동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지 말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그 안 가득 스쳐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담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니까. 여행지의 성격을 띄고 조금씩 변해가는 큰 마을들보다 덜 때묻고, 더 독특한 모습들을 볼 수 있으니까.
여행사까지 걸어가는 길에 유진이.
중간에 내려준 휴게소에서 사먹은 바나나칩. 한국에서 안주로 접할 수 있는 말린 바나나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오히려 생생 고구마칩과 좀 더 비슷한?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술안주' 삼고 싶어지는 맛이라는 거.
중간에 멈춘 휴게소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이것보다 말도 안되게 더 멋있는 모습들이 이동하는 내내 계속 펼쳐졌는데, 찍을 때마다 흔들려서 제대로 남긴 게 단 하나도 없어서 아쉽다. 흐엉.
요즘의 겨울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저 진한 하늘색. 저 진한 파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정말.
중간에 내린 휴게소에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던 한 아저씨.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기대어져 있는 나무 위를 걸어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밑은 구해줄 길 없는 낭떠러지던데....... 무섭지도 않나요 아저씨!
버스는 예상시간을 훨씬 넘겨 한 세시 반 정도에 루앙프라방 터미널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 중심지에서부터 몇키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뚝뚝을 타고 가야한다. 우리는 그냥 다른 외국인들이 짐을 싣고 있던 한 뚝뚝으로 걸어가 합류해도 좋냐고 물어본 다음 탔다. 가격은 뚝뚝에 몇명이 타든 상관없이 한사람당 10,000낍.
루앙프라방 중심지에 내린 이후 우리는 먼저 조마베이커리를 찾았다. 조마베이커리 옆 골목으로 싸고 괜찮은 숙소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작년보다 다소 오른 가격들. 두세군데를 찍어 방을 둘러본 뒤에 방도 나름 깔끔하고, 비교적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WIFI가 되었던 숙소를 선택했다. 가격은 1박에 한사람당 100,000낍. 우리는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빨리 구경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우리는 해자 지기 전에 서둘러 푸시 산에 올라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푸시산 입구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호객행위인가 싶어서 그냥 무시하며 걸어갔는데 알고보니 방비엥에서 만났었던 Scott이었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 우리 셋은 다시 만나서 신기하다며 같이 푸시산을 올랐다. 어제 방비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잔뜩 들려주면서.
푸시산 올라가는 길에 아래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입장료는 20,000낍.
푸시산에서 내려다 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프랑스 식민지였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탓일까. 흰 벽에 빨간 지붕을 한 모습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유럽의 한 마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이 사진! 얼핏 보면 동남아의 한 마을이라고 보기 정말 어렵지 않은가.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모습.
산을 뒤로 하고 그 사이로 푸른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지는. 일몰보다도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 푸시산은 필수 코스인 것 같다.
산 정상에는 이런 금빛 탑도 있다.
그래도 일몰을 보러 왔으니 봐주어야겠지.
일몰을 볼 수 있는 쪽에는 진작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사진 속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동양인 여행객 찾기가 의외로 힘든 것이 동남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백인 아이들이 어쩜 저리도 많은지. 그리고 얘기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동남아만 적어도 한두달은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
푸시산의 일몰. 메콩강과 산 뒤로 넘어가는 해의 모습이 꽤 멋지긴 했는데, 사진 거의 정중앙에 있는 저 전신주,그래 너! 너만 없으면 훨씬 멋진 모습이었을텐데..
전신주를 사이드로 치워버리니 더 좋네.
해가 거의 넘어가면서 하늘이 파스텔톤 남빛으로 변해가는 모습.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춥고 어두운 밤의 시간이 오기 직전, 주황색으로 잠시나마 따뜻하게 물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이.
일몰 자체는 더 웅장하고 멋질 건 딱히 없었다. 다만 산수를 함께 만끽할 수 있어서 좋은 그림이었다고나 할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바로 야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 저녁 다섯시경부터 열시까지 도로에 야시장이 열린다. 이 시간동안 차량의 출입은 통제된다. 우리가 푸시산에 오를 즈음에는 벌써 몇몇 상인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나열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산을 내려오니 야시장은 이미 활기를 찾은 상태였다. 나와 친구는 푸시산을 내려온 이후 Scott과 헤어져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먹은 거라곤 휴게소에서 사서 나눠먹은 오레오와 바나나칩 조금, 귤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야시장의 모습들, 공개합니다.
푸시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야시장의 모습들. 파란색과 빨간색과 같은 원색의 천막들이 한층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one of the best pic ever. 뒷쪽 사원에서 나오는 조명과 그 양옆으로 펼쳐진 야시장의 불빛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채식부페. 접시에 원하는 만큼의 음식을 덜어먹을 수 있다. 한 접시에 10,000낍. 단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페'와 달리 음식을 딱 한 번만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담아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피자헛 샐러드바 이용하던 신공으로 열심히 담았다.
우리가 가득 담아낸 접시의 모습. 여기에 스프링롤 하나를 추가했다(1,000낍). 정말 수상해 보이는 것 딱 두가지를 제외하고 다 담았는데 모든 음식이 다 입에 맞았다. 나물반찬이나 밥을 즐겨 먹는 게 비슷해서 그런가, 흔히들 말하는 동남아 특유의 향도 없고 정말 맛있었다. 싸고 든든한 식사.
한 접시를 나눠먹으니 배가 아쉬운 듯이 차서 쉐이크를 사서 마시기로 했다. 친구는 과일쉐이크를, 나는 커피쉐이크를 마셨다. 한잔에 5,000낍. 근데 이 커피쉐이크가 너무나도 맛있는 거다. 쓰디쓰게 우려낸 라오스식 커피에 얼음과 연유를 넣고 갈아내서, 달달하면서도 그 단맛이 과하지 않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맛있는 쉐이크를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니, 나같은 배낭여행객에게 이런 천국이 또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의 국화빵 같은 것이 라오스에도 있었다. 우리끼리 명하길, '라오스식 코코넛 풀빵'. 호기심에 한 번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친구가 사서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안나는데 한봉지 5개에 4천낍 정도였던 것 같다. 달달하면서도 부들부들 촉촉하고, 코코넛 향이 입 안 가득 번지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방콕 짜뚜짝 주말시장에서 먹었던 코코넛 아이스크림에 이은 코코넛의 재발견이었다.
야시장의 모습. 각종 기념품들을 판매하는데 흥정은 기본이다. 30%는 기본이고 최대 50%까지도 깎아봤다. 흥정에 앞서 자신의 지불의사가격의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이 흥정의 기본 중의 기본.
특히 스카프가 가격 대비 예쁜 디자인도 많고 질이 좋으니 구입하면 좋다. 다른 티셔츠나 가방 같은 경우 한국에서까지 착용하려면 다소 촌스럽거나 기념품스러운 감이 적잖아 있는데, 스카프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지하상가 가격으로 훨씬 괜찮은 걸 구입할 수 있다(!) 나도 도톰하고 굵은 실로 짜낸 목도리 하나와 얇은 실크스카프 한 장을 구입했다.
라오스식 그림. 하나쯤 사고 싶었는데 의외로 비싸더라구.
각종 가방 등을 걸어놓고 파는 노점.
이 날 엄청 슬펐던 일 하나. 바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터키에 다녀오면서 사다준 손바닥만한 크기의 천지갑이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흘린 것이 분명했다. 안에는 우리나라돈 약 7만원 정도의 낍과 체크카드가 있었다. 놀라서 한참동안 친구와 시장을 돌며 지갑을 찾았지만 헛수고. 국제전화로 체크카드만 얼른 정지해 두었다. 한화 7만원 정도면 라오스에서 꽤 큰돈인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에서 그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체크카드보다 더 중요한 신용카드는 숙소에 있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돈을 지갑에 전부 넣어두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보관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회 결과 체크카드에서 돈도 빠져나가지 않았고. 여행을 숱하게 했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건 또 처음이어서 조금 놀라우면서도 황당했달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걸. 아직 남은 일정을 즐길 정도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으므로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 계속 곱씹어 봤자 병만 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 날 외출하면서 가지고 나온 돈 중 가방에 남아있던 돈으로 오징어를 샀다. 오징어 씹고 삼키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지갑에 대한 미련 또한 삼켜 넘기려고... 방콕 카오산에서 처음 보고 신기했었는데, 라오스에서도 똑같이 말린 오징어를 팔고 있더라. 두 마리에 4,000낍.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쪼그라드는 오징어의 모습. 고추장과 마요네즈 콤비가 그리워지는 순간.
여기에 비어라오까지 큰 걸로 한 병 사서 친구와 숙소에서 작은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조마베이커리 옆 게스트하우스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
우리는 비어라오와 오징어, 낮에 먹다 남긴 바나나칩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함께 여행하며 있어왔던 일들과, 각자 한국과 홍콩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술 한잔한잔에 오고갔다. 와이파이가 되었기 떄문에 내 아이폰을 통해서 중요한 메일 등을 체크해 보기도 하고. 다음날 어떻게 돌아다닐지 이야기를 하다가 우선 아침에 탁밧 행렬을 보기로 했다. 탁밧 행렬이란 스님들이 일렬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밥이나 과일을 얻는 핼렬을 말하는데, 해가 뜰 무렵에 하기 떄문에 행렬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잔을 비우고 씻은 다음 잠을 청했다. 햇님보다 더 부지런히 일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는 짐을 모두 싸서 챙긴 후 비장한(?) 각오로 숙소를 나섰다. 그렇다. 오늘은 바로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날. 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소이긴 했지만, 전에도 언급했듯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기 위해선 험한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좁고 험한 산길 드라이브가 바로 그것. 그리고 나와 친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좀 더 비장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경치가 훨씬 좋다는 오른쪽 자리를 사수해 사진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친구는 멀미가 심한 만큼 비교적 편한 편이라는 앞자리를 사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밴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우리는 2인 1조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한 명이 짐을 맡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잽싸게 자리를 잡자고 말이다.
늘 그래왔듯 예정된 시간보다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늦게 픽업차량이 우릴 터미널까지 태워주러 왔다. 근데 이 픽업차량으로 온 버스가 아주 가관이다. 버스의 낡은 정도와 맨 앞에 써있는 일본어로 대략 80년대에 일본에서 쓰이다 이 쪽으로 넘어온 것 같은 차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열악했다. 설마 이걸 타고 계속 루앙프라방까지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다 되었을 정도. 다행히도 버스는 우리를 여러 대의 미니밴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터미널로 추정되는 공터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거기서부터는 그냥 아무 미니밴이나 잡고 티켓을 보여주며 타면 된다. 우리의 2인 1조 플레이는 대성공적이여서, 각각 미니밴 맨 앞줄 왼쪽 창가와 가운데 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내가 고대했던 오른쪽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보니 오른쪽 자리의 특성상 보조의자에 앉게 되기 떄문에, 장기간 험한 길을 달릴 경우 머리받침이 없어 상당히 불편할 뻔했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 앉은 자만의 특권으로 왼쪽, 오른쪽 경치를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된 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길고긴 루앙프라방행(行)은 그야말로 '익스트림'했다. 차선도 없고, 포장상태도 좋지 않은 길이 끝없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산속마을 아이들도 튀어나오고, 물소떼도 튀어나오는 그런 길이었다. 여행지에서만은 매우 낙천적인 내가 다 긴장해서 저러다 어린 아이들이 차에 치이면 어쩌나, 이런 산 속 험한 길에서 저렇게까지 속력을 내도 되나 하고 걱정했을 정도.
하지만 덕분에 정말 색다른 라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평지도 전혀 없는 곳에 집들이 있는 걸 보며 신기해하고, 아이들이 갓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도 보고,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풀을 말려 지붕으로 얹고 진흙으로 벽을 바르는 전통 가옥들도 실컷 보고, 볕이 좋은 곳에 아낙들이 풀을 탁탁 치며 말리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하고, 무엇보다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산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결코 편한 여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라오스를 여행하는 이라면 꼭 산길을 버스로 이동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지 말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그 안 가득 스쳐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담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니까. 여행지의 성격을 띄고 조금씩 변해가는 큰 마을들보다 덜 때묻고, 더 독특한 모습들을 볼 수 있으니까.
버스는 예상시간을 훨씬 넘겨 한 세시 반 정도에 루앙프라방 터미널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 중심지에서부터 몇키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뚝뚝을 타고 가야한다. 우리는 그냥 다른 외국인들이 짐을 싣고 있던 한 뚝뚝으로 걸어가 합류해도 좋냐고 물어본 다음 탔다. 가격은 뚝뚝에 몇명이 타든 상관없이 한사람당 10,000낍.
루앙프라방 중심지에 내린 이후 우리는 먼저 조마베이커리를 찾았다. 조마베이커리 옆 골목으로 싸고 괜찮은 숙소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작년보다 다소 오른 가격들. 두세군데를 찍어 방을 둘러본 뒤에 방도 나름 깔끔하고, 비교적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WIFI가 되었던 숙소를 선택했다. 가격은 1박에 한사람당 100,000낍. 우리는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빨리 구경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우리는 해자 지기 전에 서둘러 푸시 산에 올라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푸시산 입구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호객행위인가 싶어서 그냥 무시하며 걸어갔는데 알고보니 방비엥에서 만났었던 Scott이었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 우리 셋은 다시 만나서 신기하다며 같이 푸시산을 올랐다. 어제 방비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잔뜩 들려주면서.
그래도 일몰을 보러 왔으니 봐주어야겠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바로 야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 저녁 다섯시경부터 열시까지 도로에 야시장이 열린다. 이 시간동안 차량의 출입은 통제된다. 우리가 푸시산에 오를 즈음에는 벌써 몇몇 상인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나열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산을 내려오니 야시장은 이미 활기를 찾은 상태였다. 나와 친구는 푸시산을 내려온 이후 Scott과 헤어져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먹은 거라곤 휴게소에서 사서 나눠먹은 오레오와 바나나칩 조금, 귤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야시장의 모습들, 공개합니다.
특히 스카프가 가격 대비 예쁜 디자인도 많고 질이 좋으니 구입하면 좋다. 다른 티셔츠나 가방 같은 경우 한국에서까지 착용하려면 다소 촌스럽거나 기념품스러운 감이 적잖아 있는데, 스카프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지하상가 가격으로 훨씬 괜찮은 걸 구입할 수 있다(!) 나도 도톰하고 굵은 실로 짜낸 목도리 하나와 얇은 실크스카프 한 장을 구입했다.
이 날 엄청 슬펐던 일 하나. 바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터키에 다녀오면서 사다준 손바닥만한 크기의 천지갑이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흘린 것이 분명했다. 안에는 우리나라돈 약 7만원 정도의 낍과 체크카드가 있었다. 놀라서 한참동안 친구와 시장을 돌며 지갑을 찾았지만 헛수고. 국제전화로 체크카드만 얼른 정지해 두었다. 한화 7만원 정도면 라오스에서 꽤 큰돈인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에서 그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체크카드보다 더 중요한 신용카드는 숙소에 있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돈을 지갑에 전부 넣어두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보관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회 결과 체크카드에서 돈도 빠져나가지 않았고. 여행을 숱하게 했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건 또 처음이어서 조금 놀라우면서도 황당했달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걸. 아직 남은 일정을 즐길 정도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으므로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 계속 곱씹어 봤자 병만 되는 법이니까.
여기에 비어라오까지 큰 걸로 한 병 사서 친구와 숙소에서 작은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우리는 비어라오와 오징어, 낮에 먹다 남긴 바나나칩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함께 여행하며 있어왔던 일들과, 각자 한국과 홍콩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술 한잔한잔에 오고갔다. 와이파이가 되었기 떄문에 내 아이폰을 통해서 중요한 메일 등을 체크해 보기도 하고. 다음날 어떻게 돌아다닐지 이야기를 하다가 우선 아침에 탁밧 행렬을 보기로 했다. 탁밧 행렬이란 스님들이 일렬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밥이나 과일을 얻는 핼렬을 말하는데, 해가 뜰 무렵에 하기 떄문에 행렬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잔을 비우고 씻은 다음 잠을 청했다. 햇님보다 더 부지런히 일어나기 위해서.
'유랑 > 2011 방콕(태국), 라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오스+방콕 6일째(2)-꽝시폭포의 푸른물에 흠뻑 빠지다. (0) | 2011.01.30 |
---|---|
라오스+방콕 6일째(1)-루앙프라방의 아침을 열다 (0) | 2011.01.30 |
라오스+방콕 4일째 - 방비엥에서의 물에 젖은 하루 (0) | 2011.01.25 |
라오스+방콕 3일째 - 드디어 라오스 땅을 밟다 (0) | 2011.01.23 |
라오스+방콕 2일째 - 짜뚜짝주말시장과 왓아룬, 그리고 라오스로 (0) | 2011.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