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에서의 두 번째 아침. 방콕과는 달리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탓에 바들바들 떨면서 샤워를 하고, 본격적으로 '입수준비'를 마친 후 숙소를 나섰다. 옷은 최대한 간결하게, 그리고 카메라는 숙소 깊은 곳에 고이 숨겨두고. 카약킹 투어시 각자에게 방수 가방을 나눠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워낙에 그런 것들을 불신하느지라 카메라 가져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망가진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카메라가 한 번 망가지면 남은 여행 일정동안은 사진을 남기지 못할 거라는 게 제일 꺼려졌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dslr은 놓고 가고, 대신 어제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에서 구입한 일회용 방수 카메라와, 자그마한 지퍼백에 이중으로 포장을 해 둔 아이폰을 챙겨갔다. 사진을 아예 안찍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해는 제법 쨍쨍 내리쬐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은 추운 이 묘한 라오스의 아침 날씨. 뜨거운 햇빛과 찬 바람을 동시에 맞으며 방비엥의 아침 거리를 걸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 마다 현지인들은 정겹게 '싸바이디' 하고 라오스식 인사를 해 주었다. 풍족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어쩜 저리도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지. 그 정겨운 싸바이디로 우리는 매일의 아침을 열었다. 루앙프라방으로 아침 일찍 떠나는 Scott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어제 카약킹 투어를 예약했던 Riverside Tours로 가서 투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여행사에 다른 외국인들도 앉아 있길래 혹시 같은 일일 카약킹 투어 일행인가 싶어 물어보니 자기네들은 비엔티엔까지 카약킹을 하려 한단다. 아니, 차타고 서너시간은 족히 걸리는 그 길을, 카약을 타고 내려가겠다니? 그것도 지금과 같이 강 수위도 낮고 물 흐름도 잔잔한 건기에? 실로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픽업 차량. 이 날 우리의 카약킹 멤버는 우리와 가이드 한명, 네덜란드에서 온 여자 배낭여행객, 그리고 태국에서 온 커플 한 쌍 총 여섯명이었다. 이 날 반나절 카약킹 투어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오전 수중동굴 탐험 -> 점심식사 -> 카약킹 -> 중간지점에서 점핑대 있는 곳에서 휴식 -> 오후 4시경 카약킹 종료
그 첫번째 일정으로 우리를 태운 뚝뚝은 먼저 수중동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꽤 강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 수중동굴 탐험이라니, 말만 들어도 묘하게 짜릿해지는 기분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탐험가처럼.
지금부터 카약킹 반나절 투어의 사진이 시작된다. 아이폰으로 아쉽게 찍은 거라 사진이 건질 만한 게 별로 없다. 그 생생한 현장을 남길 수 있어야 했던 건데 아쉬운 마음 뿐..... 게다가 여행사에서 나눠준 방수가방은 정말 안전했다! 아무리 물에 가방을 넣어도 물 한방울 들어가질 않더라구..
그런데 물이 찼다. 정말이지 너무 차가웠다. 햇빛은 마구 내리쬐는데도 물은 왜 그러는지. 그 차가움에는 계속 적응이 되지 않더라구.....
여기서 작은 사건이 하나 일어났었다. 두 번째로 점핑을 시도하던 친구가 손잡이에서 미끄러져 본인도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떨어지고 만 것. 문제는 친구가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물에 빠진 뒤로 패닉에 빠져 물살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떠내려가기 시작한 것. 다행히 가이드와 다른 한명이 친구를 물 속에서 일으켜 세워 주었다. 정말 어찌나 걱정이 되었는지... 점핑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라서는 나와 친구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왔다. 다행히 친구는 입술 안 쪽에서 살짝 피난 것을 제외하곤 외상적으로는 멀쩡했다. 좀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바로 다음부터. 누군가 가져다 주신 얼음봉지를 상처가 난 부위에 얹어주고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우리가 왜 여기에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순간 친구가 나를 놀리나 싶어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만 친구는 꽤나 진지했다. 우리가 왜 한국도 홍콩도 아닌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가 하도 진지하니까 그제서야 차근차근 진지하게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한참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야 친구는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경험이 되었다. 그래도 무사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우리가 갔을 때가 딱 건기여서 수위도 낮고 유속도 느려 노 젓기도 힘들고 짜릿함과는 거리가 먼 카약킹이었지만, 그 풍광을 찬찬히 눈에 담아가며 노를 젓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빠르게 내려가느라 눈 앞의 돌이나 white water만 바라보지 않고, 물 한 번 보고, 하늘 한 번 보며 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그리고 짜릿함이라면, 수중 동글 탐험으로 이미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 방비엥에 가면 꼭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카약킹 종료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숙소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널어둔 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번에는 카메라를 들고! (화질이 갑자기 업그레이드 되어도 놀라지 마시길)
우리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들판을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 다니는 길은 있는데 어둑어둑해져서 그런가 주변에 우리 말고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해가 완전히 다 진 후에야 우리는 들판을 빠져나왔다.
다음날은 아침 9시까지 여행사 앞으로 가 루앙프라방행 버스를 타야 했으므로 우리는 더 놀지 않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챙긴 후 잠을 청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타임지 선정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장소 1위에 빛나는 루앙프라방에 가게 되는구나. 이번 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기대하고 있던 장소가 드디어 다음날로 다가오니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물론 우리와 루앙프라방 사이에는 악명 높은 산 중 구비구비 험한 길이 남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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