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고 너무나도 편히 잘 자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꺠우길래 영문도 모르고 나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에 한 번 내리고 그 다음에 국경 넘기 전 여권을 제출해 라오스 내에서 이동하는 버스표를 받고 아침식사를 하고, 국경에서 태국 출국카드를 제시하고 출국도장을 찍고, 우정의 다리를 건너 라오스 국경에서 입국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중간에 내릴 때에는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방콕보다 훨씬 북쪽이어서 그런가 반팔 반바지였더라면 그야말로 동남아에서 얼어죽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날 뻔했다. 얇은 긴바지에 반팔, 그 위에 긴팔 가디건을 걸친 차림이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다. 자고 일어난 직후여서 더 춥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나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이동 루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긴팔 긴바지는 무조건 챙기시길. 한국에 두고 온 후디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침에 태국쪽 국경에서 내려서 사먹은 아침식사. 커피나 티 한 잔에 토스트 두 개가 40밧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이날과 다음날은 여행경비를 적어둔 종이를 잃어버려 정확한 금액을 알 길이 없다) 거의 열두시간을 아무것도 안먹고 있다가 먹어서 그런지 토스트도 술술 잘 넘어가더라. 커피는 동남아식 커피, 로부스타종 커피답게 엄청 썼다. 내가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에 샷추가 해서 먹거나 물 적게 타서 진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인데..... 로부스타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연유가 필요해!

아침식사를 한 곳은 이렇게 나름 운치가 있는 강변. 아침 물안개가 피어올라 강 건너편의 라오스 땅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 곳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안내자에게 건네받은 라오스 입국카드를 작성했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는 Friendship Bridge라고 불리는 다리를 타고 강을 건너 라오스 국경에 도착했다. 라오스 비자가 필요한 백인들은 길게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한국인들은 15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말씀. 너무나도 간단하게 라오스 입국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역시 추위에 떨며 비엔티엔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탔고, 비엔티엔에 도착해서는 바로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이동해서 한시간 가량 방비엥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외국인이 1달러가 몇 낍(라오스의 화폐단위)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어서 1달러당 약 8천낍 정도라고 답변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쪽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프랑스 퀘벡주에서 온 노부부 한 쌍과(그래서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역시 캐나다 출신이나 영어사용자이고, 현재는 일본 내의 미쯔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Scott이란 아저씨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치앙마이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서로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The more you know, the more you find out that you do not know.'
정말 그렇다. 말 그대로,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을 아무리 다녀도,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떄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방대함에 우쭐함을 꺾고, 보다 더 많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한 시간을 기다려 타게 된 방비엥행 버스는 먼지투성이 길을 달려 예상보다 빠른 3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우릴 방비엥의 길거리에 내려주었다.

이것은 방비엥 가는 길 중간에 점심을 사 먹으라고 내려준 곳에서 사먹은 치킨샌드위치.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영향으로 가격대비 훌륭한 바게트를 구워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사 먹어 보았다. 한 개에 10,000낍이었지만 아직 낍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달러로 계산. 달러로 사니 두 개에 3달러랜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싸잖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치킨이 좀 짜고 마요네즈가 뭉쳐있긴 했지만 빵 자체가 바삭하고 맛있어서 한 개를 금방 뚝딱했다.

방비엥 길거리에 도착해서는 아까 버스를 기다리며 함께 이야기했던 Scott과 셋이서 숙소를 함께 찾아보자고 얘기가 되었다. 일단 우리는 근처 환전소 겸 여행사에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환전하고(1달러당 7,900낍으로 통상 적용되는 1$=8,000낍보다는 좋지 않은 환율이었지만, 그래봤자 겨우 몇 원, 몇십원 차이였기에 쿨하게 환전했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미니밴을 예매했다. 미니밴은 100,000낍. Scott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가는 버스를, 우리는 이틀 뒤 아침 9시에 출발하는 미니밴으로 예약했다. 나와 유진이는 추가로 다음날을 위해 카약킹 투어를 예약했다. Riverside Tour란 여행사에서.
그리고 내가 프린트해 온 방비엥 정보와 론리플래닛 숙소를 찾아보면서 괜찮다 싶어 결정한 Le Jardin Organique란 숙소를 조금 헤맨 끝에 찾아내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나와 친구는 한 방을 쓰고, Scott은 옆방 투숙객이 되었다.

버스로 열두시간이 넘도록 이동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씻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어찌나 개운하고 시원하던지. 옷도 갈아입고, 렌즈도 끼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다시 Scott과 만나서 셋이서 방비엥을 조금 걸어 구경해 보았다.

평화로운 강변 풍경. 우리나라의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산들과는 달리 경사가 매우 가파른 돌산들.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들도 많다고 하고.

정말 저 어딘가에는 신선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방비엥이 변했네, 어쩌네 해도 강 남쪽 부근만큼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하더라.
강 위에 떠있는 보트들.
물에 비친 산까지,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고 조용했던 방비엥의 길거리.

걸어다니다가 출출하기도 하고, 맛있는 걸 한번 더 맛보고 싶기도 해서 친구와 로띠를 사먹었다. Scott은 자기는 달달한 것이 싫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한 입 먹어보곤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일반 바나나보다 훨씬 더 샛노란 몽키바나나를 송송 썰어놓은 다음,
뜨거운 철판 위에 기름 붓고 마가린 넣고 얇게 펼쳐놓은 밀가루 반죽에 바나나 넣고 굽다가
꺼낸 뒤 먹기 좋게 썰어주고
썰린 후의 모습
그 위에는 달달하도록 연유를 마구마구 뿌려준다. 방비엥의 로띠는 한 개에 10,000낍. 태국에서의 로띠보단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더 크고 푸짐하기도 해서 따지고 보면 더 비싼 것도 아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 강변의 일몰은 그야말로 환상적.
보기엔 너무나도 위태위태한 다리가 강변 곳곳에 있다.


해도 지기 시작하고 슬슬 배고파져서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 추천이라고 뜬 Organic Farm Cafe에 가서 먹기로 결정. Scott은 치킨볶음밥고 비어라오 한병을, 유진이와 나는 각각 그린커리와 노란커리, 그리고 멀베리 주스 두 잔을 주문하기로 했다.

이것이 멀베리 주스. 분명 똑같이 주문했는데 나는 작은 잔에, 유진이는 큰 잔에 주길래 황당했다. 내가 this is so unfair!라고 하니 Scott이 that's life라고 했다. hmm...
유진이의 그린커리. 커리야채볶음이 적합한 한국식 표현일듯. 맛있었으나 밥도 주문할 걸 하는 아쉬움이.
이것이 나의 커리. 워낙 묽어서 밥이랑 같이 먹지 않아도 curry soup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니 괜찮았다. 야채들이 아낌없이 팍팍 들어가 있다. 이게 또 은근 배불러서 결국 먹다 남겼다는 거. 
가격은 멀베리 주스가 8,000낍, 내 노란커리가 17,000낍이었던 것으로 기억.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Scott은 일본 나가사키에 살면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동양 문화에 관심도 많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절친한 한국인 친구가 여럿 있고 한국도 몇 번 가 보았다며 한국의 문화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난 뒤 피곤해서 이젠 쉬어야 겠다는 Scot과 명함을 받은 뒤 헤어졌다. 우리는 아직 쉬기엔 너무 들떠있었으므로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하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Bucket Bar. Bucket Bar가 총 두 군데에 있는데 하나는 카약킹/튜빙 하다 중간지점에 bar들 밀집한 지역에 있고, 다른 하나는 강변이 아닌 숙소, 여행사 밀집 구역에 있다. 강변 쪽은 밤에 외국인들 마약도 많이 하고 매우 시끄럽다고 하는데, 이 쪽은 다들 건전하게 놀고 있었다. 저렇게 쿠션이 있는 편안 좌식자리에 앉아 얘기하고, 가운데 비치된 pool table에서 bucket내기 당구하고.
우리가 시킨 bucket을 들고 사진 한 장. 이곳의 이름은 바로 이 bucket에 칵테일을 가득 담아 팔기 떄문! 이 날 총 두 개를 시켰는데 둘 다 정말 맛있었다. 특히 레드불과 콜라가 들어간 칵테일은 정말 맛있었음. 꼭 시도해 보길 바란다! 적당히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한 수다를 떨었다. 남들 눈치보지 않고 크게 웃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선선한 저녁바람 맞으며 편히 앉아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국엔 이런 바 하나 차릴 수 없는거야?
이렇게 라오스스러운 등도 달려 있다는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한 백인 남자가 자신을 핀란드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너네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그렇구나 하면서 요즘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을 묻고 가더라. 이후에 그 쪽 테이블 사람들이 우리에게 왔던 핀란드 친구도 가고 인원이 적어지면서 우리에게 조인해도 되냐면서 왔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를 포함해서 여섯명이서 신나게 이야기하며 놀았다. 우리에게 온 외국인 네명 중 두명이 무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멀리서 우릴 보고 한국인일 거라며 미리 친구를 시켜 물어본 거란다. 한 명은 영어유치원 교사고 다른 한명은 대학에서 공학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했다. 나머지 둘은 독일에서 온 남자 한명과 미국에서 온 여자애 한 명. 워낙 다들 입담이 좋아서 나와 친구는 실컷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신개념의 바에서 더욱 신개념의 칵테일도 맛보고, 간만에 친구와 girls talk도 즐기고, 외국인 친구들과 유쾌하게 수다도 떨고. 길고 추웠던 버스에서의 시간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즐거운 밤이었다. 이 떄 까지만 해도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지 못한채....









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