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1. 12. 16. 01:23

제목만큼이나 정말로 소설보다 이상한 이 영화. 동시에 'Kinda like Fiction'이기도 하다. 바로 전지적 작가시점, 희극적 요소, 복선이라는 세 가지 특징들이 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할까!


1. 전지적 작가시점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이 곧 영화 속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미완성 소설의 주인공 말이다. 그럼 아직 출판되지도 않은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인지 어떻게 아냐고? 작가랑 사전에 합의를 해서? 우연히 작가의 집필 노트를 보게 되어서? 아니다. 바로 작가가 '해설하는' 음성을 듣게 되면서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 전 양치질을 하면서 자신이 몇번이나 칫솔질을 하는지 세어보고 있던 우리의 해롤드. 갑자기 그의 생각이나 행동을 묘사하는 음성을 듣게된다.

"Alright, who just said 'Harold just counted brush strokes'? And how do you know I'm counting brush strokes?"

자신이 하는 행동, 하는 생각과 백퍼센트 일치하는 족집게 음성을 들으니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 근데 이 목소리, 자신이 매력적인 빵집 여주인을 보고 갖게 되는 이성적 감정까지도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일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젠장, 이 짜증나는 목소리야,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No I'm not, I'm cursing you, you stupid voice!'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인가도 의심해 보다가 어느날, 고장난 시계를 고치다가 들려온 그 목소리의 청천벽력같은 말. 'Little did he know that this simple, seemingly innocuous act would result in his imminent death.'
지금까지 얄밉긴 해도 단 한번도 틀린 말 한 적 없었던 이 목소리가 자신더러 죽을 거라고 하니 당연히 심각해질 수 밖에. 그제서야 해롤드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보고, 그 사람을 통해 문학전공 교수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해롤드를 정신병자인 것처럼 취급하던 교수는, 해롤드가 'little did he know'로 시작되는 음성을 들었다고 얘기하는 순간 그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왜냐하면 영미 문학에서 'little did he know'로 해설되는 것인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이라는 말이니까.

결국 'little did he know'란 표현을 통해 해롤드는 그 음성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라(=자신이 정신분열증인 것이 아니라), 제 3자의 목소리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소설 속 주인공인데 원치 않은 죽게 된 것을 알게 되었는데 죽기 싫다면? 작가를 만나서 결말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해롤드와 교수의 만남을 계속 이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작가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


2. 영화 자체는 한 편의 '희극'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전형적인 희극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희극의 특징이 뭔데?라고 물어볼 사람을 위해 네이버 지식사전의 일부분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해서 가져와 보았다.

 희극은 행복하고 즐겁게 결말을 맺는다. 주동인물이 처음에는 패배하고 고전하지만, 결국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에 이른 것이 희극이다. 희극의 인물은 서민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비극의 인물이 고귀한 신분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점과 서로 다르다.

우선 주인공 해롤드에서부터 이 희극이 특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당연하게도)알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유명한 스타라거나 대기업 회장인 것도 아니다. 그저 국세청의 평범한 직원일 뿐. 유일하게 잘난 게 있다면 암산과 숫자 세기에 뛰어나다는 것. 하지만 그것뿐이다.

모든 것의 숫자를 세어가며 규칙적으로 일상을 무한반복했던 과거의 해롤드.


영화 초반부의 그의 삶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게다가 좋아하게 된 빵집 여주인에게서는 밀당은 커녕 대놓고 냉대를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곧 죽을 거라는 재수없는 소리나 들었으니 '패배하고 고전하지만'의 조건은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하지만 음성을 듣고, 그것이 예고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말을 계기로 자신이 정말 해 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오랜 꿈이었던 기타 연주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기타를 구입하고,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밀가루를 한아름 사가지고는 빵집 여주인에게 고백한다. 결국에는 성공하여 사랑을 얻게 되는 해롤드. 그 뿐만이 아니다. 결국에는 소설의 결말이 바뀌게 되면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남아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기타도 치고, 사랑도 얻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해피엔딩이 아니리오.

그리고 희극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바로 웃음! 영화는 박장대소는 아니어도 '깨알같은' 웃음이 가득하다는 것.



3. 복선

영화는 복선을 통해서 결말의 필연성과 작품의 흥미를 높이고 있다. 영화는 작품 초반에서부터 한 여인이 구인광고를 통해서 버스회사에 취직하게 되는 것과, 한 꼬마아이가 아버지로부터 자전거를 선물받고 연습하게 되는 것을 중간중간 담는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떡밥'을 던져놓고, 그들을 조금씩 비춰줌으로써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끝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한다. 그리고 이들이 언젠가는 서로 만나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 여인은 해롤드를 덮치는 버스의 운전수로, 자전거 꼬맹이는 해롤드가 구해주게 될 아이로 등장하며 그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이랬던 그들이....


힐버트 교수의 연구실에 있는 작은 TV 역시 복선의 한 장치이다. 영화는 전반부에서부터 힐버트 교수의 연구실 안에 있는 작은 tv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tv를 통해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는 것이 취미라는 교수의 말까지 집어넣는다.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tv가 나중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롤드가 주인공인 소설의 작가이자 음성의 주인공인 캐런 아이플이 이 tv를 통해서 나오고, 그것을 해롤드가 보게 되는 것이다! 지겹도록 들어온 목소리인데 이걸 해롤드가 놓칠 리가 없다. 그는 이를 계기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국세청 납세 기록 자료를 통해 그녀의 주소까지 알게 된다. 

이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tv가 갑자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면 시쳇말로 '갑툭튀'이고, 억지스러운 우연일 뿐. 하지만 영화는 진작부터 밑밥을 깔아둠으로써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복선의 힘.

'My God, it's her. it's THE voice, she's the narrator. That's her voice!'





+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말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으라고 이야기하는 영화
live your life to the fullest! live the moment! 라고 얘기해 주는 듯한 따뜻한 영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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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