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2015. 6. 2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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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의 첫 학기가 끝났다. 


수강하고 있는 과목 기준으로는 화요일 오후에 final term paper를 제출함으로써 종강을 맞이했고, 

조교를 맡고 있는 수업 기준으로는 바로 오늘 종강을 했다. 


한 학번 위 선배들은 쏜살같이 지나간 한 학기였다고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 논문 주제를 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 

인간관계 등에도 끊임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직장인이 학생 마인드로 탈바꿈하는 데 충분했던 것을 생각하면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길을 꼭 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한 학기였다. 

희망과 꿈, 의욕 측면에서 인생 바닥을 쳤던 회사생활이라는 확실한 비교군이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기대 이상이었다. 

이것 아니면 안돼! 하는 대단한 사명감 까진 없지만

그때보단 지금이 훨씬 행복해! 라는 확실한 느낌만으로도 버티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바로 오늘에서야 듣게 된, 내가 회사에서 담당했던 거래선의 소식. 

수화기 너머로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욕을 듣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사람들,

실무진으로서 직언을 해도 한 귀로 흘려듣고 말던 윗사람들, 

일이 더 커져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어린 여자 후배에게 입막음을 시키던 사람들, 

역대급 똥을 투척하고 잠적한 뒤 나몰라라 하고 나에게 책임을 씌우던 사람들.... 

하루하루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와 믿음조차 갖지 못하고 혼자 괴로워 했던 나날들, 

내 노동의 가치가 이리도 보잘 것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던 나날들


그 거래선의 회장은 사업 여러개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뒤 잠적했다고 하고, 

수화기 너머로 욕을 했던 인간말종 한명은 수개월째 월급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방관하던 윗사람들은 뒤늦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급급해 하고 있으며, 

결국 해당 거래선은 담보 실행으로 끝내기로 했다는 소식에 

그 동안 잊고 지내왔던 당시 나의 괴로움과 모든 고민이 한꺼번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심히 불쾌해지면서도 동시에 

그 지옥같은 시간들에서 벗어나 바라던 대로 

원하던 연구실에서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무언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으로도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한 학기였기에 감사했다. 


이젠 미국에 나가있는 econ phd 지인들과, 아빠의 경험담을 들으며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미리 많이 상상해 봤던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으려나. 

온갖 정치적인 이야기, 피말리는 인간관계 등의 스토리를 듣고는 아무런 기대없이 왔는데 웬걸,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이보다 더 바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충만한 관계였다. 

일방적으로 받고 배우기만 하는 후배 입장이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동기가 없다는 것이 좀 아쉽긴 했는데 그건 수업을 통해 해소.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heretofore..



갑자기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지금이 좀 어색하다. 

정작 약속도 다음주부터는 있는데 이번 주 주말엔 아무것도 없다. ㅋㅋ 

집에 내려가면 좋은 타이밍인데 하필 엄마아빠가 결혼기념으로 유럽엘 가셨넹 

웨이크타러 빠지가면 딱인데 하필 비가 와서 수질이 참 별로일 것 같넹

근데 간만에 혼자 여유를 즐기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 

하루종일 집에서 쉬어도 좋을 거 같고 

혼자 영화보러 가도 좋을 것 같고 (쥬라기월드도 must지만 한여름의 판타지아!! 가 제일 보고싶다)

단골카페 가서 맛난 거 먹으며 사장님이랑 간만에 수다 떨고 

서점 가서 한 쪽 구석탱이에 앉아 공부랑 상관없는 소설책 한 권 휘리릭 읽어도 충만한 주말일 듯 


평일부턴 다시 공부하는 걸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지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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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