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포스팅하지 않은지도 두 달이 넘었다. 일기장을 쓰는 습관을 들인 적이 없고, 종이로 써놓은 일기장을 누군가 엿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는 나이기에, 유일한 일기장이 있다면 이 블로그인데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난 두 달이란 시간은 내 수많은 지난 20대의 시간들이 그래왔듯 표면적 고요함과 내부적 소용돌이의 공존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좀 더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느끼다가도 길게 끌지를 못했고, 이러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대기업의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게 되면서 더더욱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확고히 갖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장기화되고, 그것이 퇴사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굳어지면서 나는 대학생때 충분히 거쳐 왔다고 생각했던 진로고민이라는 것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신입때만 하더라도 일단 회사에서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하고 볼 일이라며 애써 미래에 대한 불안과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좋든 싫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인맥을 유지하려 노력해야 하는 직업. 수준에 맞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종하기 싫을 정도로 몰상식하고 무례하며 혐오스러운 사람들도 많다.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잘 보이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느 직업에서나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영업직군에서의 '빈도'는 다른 직종에서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으로 더 나아질 일도 없을 것 같고. 애시당초 한 번 해보고 싶은 일 해보겠다는 마인드로 시작했던 일이라 처음부터 이 일을 평생하겠다는 생각은 있지도 않았지만.....
그러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짜피 회사를 계속 다닌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더 배우거나, 더 많은 자격증을 확보하거나, 더 많은 경력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공부는 계속 해야한다. 어짜피 해야 하는 공부라면 학문을 하는 것이 더 맞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어짜피 공부를 해서 유학까지 가서 박사를 따게 된다면 35~36살 정도가 되는데, 계속 회사를 다닌다면 저 나이에는 과장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해볼 만하게 느껴진다.
하루는 차분한 자세로 앉아 내가 지난 일년 반 동안의 회사생활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흥미를 느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매주 시황 리포트를 쓰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의 수급현황과 그에 따른 수출입 규제가 각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읽고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마켓현황과 무역규제가 경제학에서 다루는 거시적 흐름과 정책적 반영이라면, 그러한 외부적 자극에 대한 기업의 반응은 경영학에서 다루는 항목이다.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후자다. 기업이라는 조직이 외부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전략을 수립하여 변화를 도모하는지에 대해 보다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패턴을 읽을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양치기 소년처럼 비슷한 외부 자극의 반복에 무뎌져 있다가 이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고. 무엇보다도 기업 내부자의 시선에서 이러한 사내적 인식과 의사결정과정을 직접 보고 겪어봤다는 점이 향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건 너무 나이브한 생각인가-) ㅎㅎ
학부때보다 지속적으로 학문을 하는 진로에 대해 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이번에 진로를 바꾸게 된다면 정말 배수진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대학원을 가는 것은 살짝 늦긴 해도 최고령은 아니라 괜찮긴 하지만, 중간에 다시 그만두고 기업으로 나오려 한다면 참 답없는 나이다. 돌아갈 길 없다는 마인드로 임해야 할 것이다... 사람 만나고 노는 시간 줄이는 거야 어렸을 때와는 달리 이젠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가장 자신없는 것은 안정적인 수입과 그로 인해 가능했던 소비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학부때는 금전적 부담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고, 열심히 저축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에서 충분히 모아서 여행을 가고 사고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직장인의 생활에서, 다시 학생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까? 평균적으로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게 되고, 나이와 직장에 걸맞는 옷차림으로 갖추게 된 내가 다시 학생식당 밥이나 먹고, 물욕을 학생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좋든싫든 이 나이 되어서 다시 금전적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싫다. 경영학쪽이 유학가기 어려워서 그렇지 나가면 풀펀딩이라 돈 걱정은 없다고 해도, 최저생활비 이상으로 소비하려면 집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은 분명한데 말이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과, 올 한 해 좀 더 모은다 하더라도 삼사천만원 수준일텐데, 이걸로는 어림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올해 상반기까지는, 회사 밖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가능성 검토에 쓰기로 했다. 일단 장기적으로 유학까지 목표로 한다고 했을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학점. 3.9/4.3인 애들도 제 학점 괜찮나여 징징 하고 글 올리는 마당에 내 학점은... ㅋㅋ 웃음이 나올 뿐이다 ㅋㅋㅋㅋ 시간 좀 돌이키고 싶다ㅋㅋㅋㅋ 는 진부한 후회가... ㅋㅋㅋㅋ 하지만 학부때 학점이 평생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도 웃기고, 진짜 잡고 앞길을 막는 세상이라면 그러라지 싶다. 그땐 국내박사라도 하던가 어디 석사 연구원으로라도 들어가지 뭐. 오히려 학부때에도 학점 하나 때문에 너무 겁을 먹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연구능력과 아이디어인데 말이다. 물론 내가 저런 능력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거야 정말 열심히 해보고서야 부족하든 말든을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일단 이미 바꿀 수 없는 부족한 학점 대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이 있어야 석사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그런 거라면 그나마 영어 아니겠는가. 그래서 고등학교때 이후 보지도 않았던 텝스를 다시 보기로 결심했다. 석사 지원 하려면 점수 있어야 하고, 그 때 서류에서 내가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영어겠지. 목표는 950 이상. 이건 고등학교 때에도 받아본 적 없는 점수이긴 하지만... ㅎㅎ 그래서 유독 어휘가 참 ㅈㄹ맞다 싶은 텝스 단어들을 퇴근후 조금씩 봐주고 있다. 당장 급한 건 아니고 상반기 내에만 점수를 만들어 두면 되니까. 또 1:1 영어 작문 학원을 등록했다. 2월 첫째주 시작 예정. 얼마나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듣기/말하기/읽기/쓰기 중 가장 취약한 것은 아무래도 쓰기이니. 회사 다니면서 고급 영작 실력이 좀 늘긴 했지만(쓸 일이 많아서) 역시 부족한 수준. 학문을 계속 하게 된다면 결국 나의 생각과 연구를 남이 읽고 평가할 수 있도록 '글'로 써야 하니 미리 영작 실력이라도 길러놓자는 생각이다. 일단 영어는 잘만 해두면 무슨 일을 하든 플러스니까.
또 하나는 관련분야 논문 여러편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거다. 근데 이 논문이라는 것이 학부때도 느낀 거지만 처음엔 잘 안읽히다가 비슷한 주제의 선행연구들 세트로 읽었을때야 뭔가 패턴이 보이고, 연구방식과 접근법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인데 아직은...음... 논문 딱 하나 1회독 했을 뿐이고, 그마저도 지금껏 내가 읽어본 경제학 분야 논문과는 연구방법도, 글의 전개도 너무 달라서 아직 나의 것으로 만들지를 못했다. 설날 연휴를 이용해서 몇번이라도 더 읽어보고 이해하도록 해 보아야지. 결국 어떠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물을 낼 수 있으려면 그 분야의 선행연구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검토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근데, 아직 고민중이다. 상반기까지 최대한 exit strategy 가능성을 검토해 보겠다는 거지, 당장 회사에서 올해 나에게 주어질 일들도 많고 그에 수반될 책임감도 커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출장과 교육기회가 무엇보다 엄청 늘 것 같은데, 그럼 결국 이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할 지도 모르지. 확실히 매력이 있기는 하니까.
내년 이맘때에는 어떤 곳에 있게 될지 참 궁금해지는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들기 전에 영어나 좀 더 보고 자야겠다. 블로그 안녕.
글도 참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데 일기는 어쩔 수 없다. 엉킨 생각을 담기에 깔끔하고 간결한 글은 뭔가 안어울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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