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공장 투어를 헛탕치고 우리가 찾은 곳은 ハ バ ランド.
바닷가 근처인 곳으로, 연인사이에 같이 오면 딱 좋을 것 같이 구성된 것이다.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고베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고(해양박물관과 포트타워가 건너편에서 보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모자이크와 작은 유원지가 있는 곳이다. 고베의 로맨틱함을 만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모자이크 쪽 간판에서 한참을 사진찍고 구경하다가 춥고 배고파서 저녁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근데 역시 연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곳이어서 그런지 죄다 서양식 레스토랑들 뿐. 게다가 문 앞에 걸려있는 메뉴의 가격도 살인적으로 비쌌다! 다른 데 먹을 거 없나 하고 뒤져보다가, 햄벅스테이크과 카레를 주로 하고 있는 びっくりドンキ- 란 곳을 찾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과 맛으로 사랑받고 있는 체인점이더라고.
아직 6시도 되기 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아직 붐비지 않는 편이었다. 덕분에 운좋게도 창가 자리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근데 이 자리가 보통 명당 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창 밖에 다음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수없이 많은 음식 그림이 있는 메뉴판을 붙잡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는 결국 메뉴를 통일해서 시켰다. 셋 다 똑같은 거 시킬 거면서 왜 각자 메뉴판을 하나씩 붙잡고 씨름했는지. (ㅎㅎ) 우리가 통일해서 주문한 것은 카레가 끼얹어진 햄벅스테이크와 계란을 추가한 것. 계란추가는 '일본식이라면 역시 카레에 계란이지!'라며 내가 제안한 것.
식사를 다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다시 식당 입구쪽으로 나와 보니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 식당 인기가 많은 곳이구나. 여섯시 되기 전에 일찌감치 좋은 자리 잡을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밖은 이미 완전히 캄캄해져 있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Mosaic 바로 옆 작은 유원지, 바로 'Mosaic Garden'.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 타보자고 애들이 제안해서 못이기는 척 같이 관람차를 탔다. 관람차에 들어가는 사람들 죄다 커플이고 여자들끼리, 그것도 세 명이나 타는 건 우리밖에 없었다(^^;)
패스로 할인도 안되어서 무려 800엔이란 거금을 주고 타게 되었다.
처음 좀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별로 무섭다는 생각은 안들었는데, 이게 점점 최고점에 다다를 무렵부터는 엄청 무서운 거다..... 고백하자면 나, 살짝 고소공포증 있다. 근데도 왜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등 높이 올라가는 격한 놀이기구 하나도 안무섭다며 잘 타고 번지점프도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들은 공중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잖아. 나는 낙하하는 게 좋은거지 절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탄탄한 건물 윗층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괜찮지만, 이렇게 썩 믿음이 가진 않은 관람차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혼자만 무서워 했더라면 제법 비웃음을 샀을 것 같은데, 다행히 무서워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앉은 도톨도 나 이상으로 무서워 하고 있었던 것. 하이라이트는 최고점을 찍었을 때인데, 이태껏 계속 위로 올라가면서 움직이는 게 시작적으로 잘 느껴졌던 관람차가, 맨 위에서는 살짝 수평으로 움직이면서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도톨은 남녀 한쌍씩만 타는 관람차에 세 명이나 타서 그러는 것 아니냐며 무서워하고..... 우리는 부둥켜 안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 앞에 앉은 예슬이는 뭐가 무섭냐며 잔뜩 신나서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예슬이가 움직일 때 마다 우린 또 질겁하며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고.... 허허. 눈 앞에서 언니 두 명이 무서워하는 걸 보는 예슬이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참. (ㅎㅎ) 다행히 최고점을 지난 이후로는 다시 내려가는 게 느껴지면서 나와 도톨 모두 안심. 그제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관람차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외 어린이용 놀이기구 위에서 온갖 설정을 잡고 찍은 사진들도 찍었지만 내 카메라엔 없어서 생략. 함께 기념으로 찍은 스티커사진은 저절로 메이크업까지 해줘서 다들 예쁘게, 그리고 본인같이 안나왔지만 스캔해 두지 않았으므로 생략.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여전히 여성스럽고 우아하던 고베. 역시 3년 전 나의 첫 인상은 틀린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혼자였다면 절대로 감히 하지 못했을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나 관람차 탑승, 스티커 사진까지. 일본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한편으로 너무 감사하던 시간. 그것도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도시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미리 엿본다는 것이 주는 묘한 기분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고베의 밤을 뒤로하고 우리 셋은 다시 전철을 타고 오사카로 돌아왔다. 그대로 헤어지에는 아쉬워서 도톰보리의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가볍게 맥주 한잔씩.
이런 저런 진지한 이야기들을 안주삼아 즐긴 생맥주 한 잔. 벌써 도톨과는 5년째, 예슬이와는 4년째. 대학이란 곳에서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왔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이해와 공감.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열심히 떠벌리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채 주는. 그 편안함과 따뜻함에 전날 잠을 거의 설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 시간까지 절로 버텨지더라.
그렇게 우리 셋이 함께 한 두번째 날이 지나갔다.
그 다음날은 예슬과 도톨이 오사카를 떠나 교토로 향하는 날. 아쉬운 마음에 역에서 가볍게 아점이라도 먹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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