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보게 된,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영화, <렛 미 인>.
이 영화를 처음 추천 받은 이후로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아왔으니까 바빠서 못 봤다고 하면 씨도 안먹힐 변명이리라. 이유를 말하자면 좀 쪽팔리긴 한데.... '무서워서' 이다. 공포 요소에 은근 약해서 남들하고 같이 보면 몰라도 혼자 자취방에서는 절대 혼자 못 볼 나이기에 피장파장 미루다가 어제 혼자 '잉여롭게' 서울 올라간 날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카페에 혼자 앉아서 봤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렛 미 인>은 생각보다 무섭진 않더군.
대조
영화에서는 수없이 많은 대조가 쓰인다. 첫장면부터가 스크린의 반은 캄캄한 어둠인 반면, 다른 반쪽에선 순백의 눈이 내리고 있다. 설원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야 말할 것도 없고. 소재적 측면에서도 소년과 소녀(?), 안과 밖, 인간과 뱀파이어 등.
이 '대조'의 측면은 영화 곳곳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고자 여기선 이정도까지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사랑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사랑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오스카와 엘리의 사랑, 엘리에게 물린 여인의 사랑,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랑,
-
오스카와 엘리가 서로에게 끌린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다.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왕따소년 오스카와 인간세계에 융화되지 못하고 장소를 전전하는 뱀파이어 엘리. 두 사람 다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였다. 그들은 어쩌면 내면의 빈 공간에 서로를 채워넣음으로서 사랑할 수 있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에게 여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오스카. 엘리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고 놀라긴 하지만 이내 그 모습마저 받아들이는 그는 결국 관계에 목말라있던 외로운 아이였을 뿐이다. 상대가 누구이건간에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줄 수 있고, 자신 또한 화답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고독함과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일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름이 존재한다. '12년 8개월 하고도 9일'로 자신의 나이를 못박는 인간 소년과 '12년.. 그보다 더이거나 덜이거나'라고 얼버무리는 뱀파이어 소녀. '12년 8개월 하고도 9일'을 살아온 오스카에게 엘리는 치명적일 정도로 큰 존재지만 삼백년을 넘게 살아온 엘리에게 오스카는 어쩌면 찰나의 인연일지도 모르겠다.
-
엘리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된 여인은 자신이 매우 무섭고 위험한 병에 감염됐음을 깨닫는다. 빛에 대한 공포, 자신을 보고 달려드는 고양이들 등에서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 또한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는 걸 도와달라고 간청하고, 열린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타들어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뱀파이어는 빛을 쬐면 안되지) 흡혈과 같이 이제는 자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죽는 걸 택한 이 여인은 내게 '성숙한 사랑'의 상징이다.
반면 엘리는 철저하게 생존욕구에 충실한 뱀파이어다. 차라리 악인들만 피를 빨아 죽인다면 또 모를까, 그녀의 공격의 대상은 무차별하기까지 하다. 그녀에겐 사랑도 결국, 생존욕구에 뒤지는 감정일 뿐이다. (어쩌면 생존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기도.... 이유는 바로 다음에.)
-
셋 중 가장 안타깝고 안쓰러웠던 이 세번째 사랑. 바로 할아버지의 엘리를 향한 사랑이다. 원작 소설에는 이 할아버지의 뒷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나온다는데, 적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걸 통해 어느 정도 추정 가능한 그는 이렇다. 한 때 오스카처럼 엘리의 사랑을 받은 존재였으나 지금은 나이를 먹지 않는 그녀와 달리 늙어버려 그녀의 생존을 돕는 존재. 엘리가 먹을 피를 공급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한 소년을 죽이려다 들키게 되자 자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엘리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염산을 끼얹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남자. 자신의 피까지도 엘리에게 주고는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 그야말로 엘리를 위해 '아낌없이 다' 주고 떠난다.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지만, 맹목적이며 다른 사람의 희생을 수반하는 사랑.
이 할아버지를 단순히 엘리의 하인이나 보호자 격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분명히 사랑의 관계다. 오늘 밤만은 그 소년을 만나지 말아달라는 할아버지의 대사에서 묻어나오던 것은 결국 사랑하는 자로서의 '질투'였다.
성장
다른 할 말도 많지만 성장 측면만 더 언급하고 영화 <렛 미 인> 에 대한 두서없는 내 감상은 맺으려고 한다. 내게 이 영화는 결국 '성장 영화' 였다. 성장기의 외로운 소년이 자신의 '안'에 소녀를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 그런 성장 영화 말이다.
소녀를 만나기 전 소년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반항 한 번 못하던 아이였다. 얼굴에 생채기가 나도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집에 가선 놀다 넘어졌다는 변명으로 상처 뒤의 어둠을 숨기기만 했던 소년. 그런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부터 달라진다. 괴롭힘을 당하면 그 이상으로 받아치라는 소녀의 논리를 받아들인 후에야 소년은 처음으로 bully에게 반격을 가한다. 그와 동시에 엘리에게 죽음을 당했던 족크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소녀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백의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검붉은 피가 흩뿌려지는 것과도 같다. 처녀막이 파열되듯, 그 성장과정은 고통과 잔인함을 수반하는 수용과정이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디까지나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하는 소품이었던 칼은 이제 사랑하는 존재 - 소녀- 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새롭게 등장한다. 소녀를 만나고부터 소년은 자신을 가두던 벽을 넘어 그 벽 밖에 있는 소녀와 소통할 방법을 찾아 모스부호를 공부해 온다. '나'만 존재하던 세상에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갖고 소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인 <렛 미 인> (원작은 Let the right one in )과 영화 속 '들어가도 될까?' 란 질문도 이 받아들임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떡밥'을 먼저 던진 건 엘리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인 건 오스카 자신의 의지였다.
...그리고 잡소리(?)
여자애보다 남자애가 더 이뻐... 헐.. 오스카는 마의 16세를 어떻게 넘길까요 .......
그리고 스웨덴 가고 싶어졌어
이 영화를 처음 추천 받은 이후로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아왔으니까 바빠서 못 봤다고 하면 씨도 안먹힐 변명이리라. 이유를 말하자면 좀 쪽팔리긴 한데.... '무서워서' 이다. 공포 요소에 은근 약해서 남들하고 같이 보면 몰라도 혼자 자취방에서는 절대 혼자 못 볼 나이기에 피장파장 미루다가 어제 혼자 '잉여롭게' 서울 올라간 날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카페에 혼자 앉아서 봤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렛 미 인>은 생각보다 무섭진 않더군.
대조
영화에서는 수없이 많은 대조가 쓰인다. 첫장면부터가 스크린의 반은 캄캄한 어둠인 반면, 다른 반쪽에선 순백의 눈이 내리고 있다. 설원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야 말할 것도 없고. 소재적 측면에서도 소년과 소녀(?), 안과 밖, 인간과 뱀파이어 등.
이 '대조'의 측면은 영화 곳곳에서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고자 여기선 이정도까지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사랑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사랑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오스카와 엘리의 사랑, 엘리에게 물린 여인의 사랑,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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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와 엘리가 서로에게 끌린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다.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왕따소년 오스카와 인간세계에 융화되지 못하고 장소를 전전하는 뱀파이어 엘리. 두 사람 다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였다. 그들은 어쩌면 내면의 빈 공간에 서로를 채워넣음으로서 사랑할 수 있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에게 여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오스카. 엘리가 뱀파이어인 것을 알고 놀라긴 하지만 이내 그 모습마저 받아들이는 그는 결국 관계에 목말라있던 외로운 아이였을 뿐이다. 상대가 누구이건간에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줄 수 있고, 자신 또한 화답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고독함과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일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름이 존재한다. '12년 8개월 하고도 9일'로 자신의 나이를 못박는 인간 소년과 '12년.. 그보다 더이거나 덜이거나'라고 얼버무리는 뱀파이어 소녀. '12년 8개월 하고도 9일'을 살아온 오스카에게 엘리는 치명적일 정도로 큰 존재지만 삼백년을 넘게 살아온 엘리에게 오스카는 어쩌면 찰나의 인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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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된 여인은 자신이 매우 무섭고 위험한 병에 감염됐음을 깨닫는다. 빛에 대한 공포, 자신을 보고 달려드는 고양이들 등에서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 또한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는 걸 도와달라고 간청하고, 열린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타들어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뱀파이어는 빛을 쬐면 안되지) 흡혈과 같이 이제는 자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죽는 걸 택한 이 여인은 내게 '성숙한 사랑'의 상징이다.
반면 엘리는 철저하게 생존욕구에 충실한 뱀파이어다. 차라리 악인들만 피를 빨아 죽인다면 또 모를까, 그녀의 공격의 대상은 무차별하기까지 하다. 그녀에겐 사랑도 결국, 생존욕구에 뒤지는 감정일 뿐이다. (어쩌면 생존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기도.... 이유는 바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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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중 가장 안타깝고 안쓰러웠던 이 세번째 사랑. 바로 할아버지의 엘리를 향한 사랑이다. 원작 소설에는 이 할아버지의 뒷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나온다는데, 적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걸 통해 어느 정도 추정 가능한 그는 이렇다. 한 때 오스카처럼 엘리의 사랑을 받은 존재였으나 지금은 나이를 먹지 않는 그녀와 달리 늙어버려 그녀의 생존을 돕는 존재. 엘리가 먹을 피를 공급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한 소년을 죽이려다 들키게 되자 자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엘리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염산을 끼얹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남자. 자신의 피까지도 엘리에게 주고는 죽음을 맞이하는 남자 -. 그야말로 엘리를 위해 '아낌없이 다' 주고 떠난다.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지만, 맹목적이며 다른 사람의 희생을 수반하는 사랑.
이 할아버지를 단순히 엘리의 하인이나 보호자 격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분명히 사랑의 관계다. 오늘 밤만은 그 소년을 만나지 말아달라는 할아버지의 대사에서 묻어나오던 것은 결국 사랑하는 자로서의 '질투'였다.
성장
다른 할 말도 많지만 성장 측면만 더 언급하고 영화 <렛 미 인> 에 대한 두서없는 내 감상은 맺으려고 한다. 내게 이 영화는 결국 '성장 영화' 였다. 성장기의 외로운 소년이 자신의 '안'에 소녀를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 그런 성장 영화 말이다.
소녀를 만나기 전 소년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반항 한 번 못하던 아이였다. 얼굴에 생채기가 나도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집에 가선 놀다 넘어졌다는 변명으로 상처 뒤의 어둠을 숨기기만 했던 소년. 그런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부터 달라진다. 괴롭힘을 당하면 그 이상으로 받아치라는 소녀의 논리를 받아들인 후에야 소년은 처음으로 bully에게 반격을 가한다. 그와 동시에 엘리에게 죽음을 당했던 족크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소녀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백의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검붉은 피가 흩뿌려지는 것과도 같다. 처녀막이 파열되듯, 그 성장과정은 고통과 잔인함을 수반하는 수용과정이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디까지나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하는 소품이었던 칼은 이제 사랑하는 존재 - 소녀- 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새롭게 등장한다. 소녀를 만나고부터 소년은 자신을 가두던 벽을 넘어 그 벽 밖에 있는 소녀와 소통할 방법을 찾아 모스부호를 공부해 온다. '나'만 존재하던 세상에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갖고 소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인 <렛 미 인> (원작은 Let the right one in )과 영화 속 '들어가도 될까?' 란 질문도 이 받아들임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떡밥'을 먼저 던진 건 엘리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인 건 오스카 자신의 의지였다.
...그리고 잡소리(?)
여자애보다 남자애가 더 이뻐... 헐.. 오스카는 마의 16세를 어떻게 넘길까요 .......
그리고 스웨덴 가고 싶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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