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9. 4. 4. 16:59


1) 카타히라 나기사, 그리고 TV

영화에서는 반복적으로 영화 속 텔레비전을 통해서 수사드라마를 보여준다. 절벽 끝에 선 절망적인 범인에게 해결사인 ‘카타히라 나기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당신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어.” 라고 외치지만, 범인들은 절벽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드라마가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쇼가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장면에서이다. 화면은 자연스럽게 쇼가 마주보고 있는 여자친구의 머리 뒤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서 방영되고 있는 그 수사 드라마의 위와 같은 전형적인 틀을 먼저 보여준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수시로 일종의 장치로써 등장시키기 위해 초석을 마련해놓은 셈이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등장할 상황 또한 여자친구에게 한심하다며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것과 같이 절망적이고 시쳇말로 ‘안습인’ 상황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다음으로 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방탕하게 살아가는 쇼가 간 성인비디오 가게 카운터에 있는 TV를 통해서이다. 쇼는 멍한 표정으로 그 드라마를 바라보면서, 카타히라 나기사가 ‘새 삶을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난 이후 드라마 속에서 절벽에 서 있는 범인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아닌, 바로 쇼다. 그리고 TV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쇼는 나기사에게 외친다. ‘무리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쇼가 그 드라마 속에서 벼랑 끝에 선 범인과 같이 절박하고 참담한 심정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한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카타히라 나기사 시리즈 말고도 TV는 영화 곳곳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연도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마츠코가 해고당했을 때는 오일쇼크로 인한 사재기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 중반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마츠코가 히카루 겐지의 팬이 되었을 때는 TV를 통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모습과 일본의 유명했던 엔카가수 미소라히바리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보여줌으로써 그때가 1989년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나중에는 한 때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경단 3형제’노래를 TV를 통해 들려줌으로써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2)마츠코 특유의 ‘엽기표정’

이 표정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위에서 화면전환 부분을 설명했을 때로, 영화의 시작부분이자 영화제목이 뜨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이 표정을 짓게 된 것은 아버지와 둘이서 백화점에 놀러갔을 때로, 옥상의 야외무대에서 아버지와 광대의 쇼를 볼 때 모두들 웃는 중에 아버지 혼자 여동생 쿠미 걱정에 시름에 잠겨 웃지 않으시자 아버지를 웃게 해드리기 위해 광대의 표정을 따라한 것이다. 아버지가 웃으시자 마츠코는 그 이후로 계속 그 표정으로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드리게 된다. 하지만 마츠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결국 마츠코가 성인이 되자 더 이상 그 표정에 웃지 않게 되고,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마츠코는 곤란한 일에 처했을 때 마다 그 표정을 짓게 된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가게주인에게 없어졌던 돈을 돌려줄 때에나, 그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에서 류의 거짓말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이 표정을 짓게 되는데, 슬프게도 이 표정은 상대방의 화를 부추김으로써 마츠코를 더 곤란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3)백화점 옥상의 야외 공연무대

아버지와 단 둘이서 백화점에 갔을 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들은 주인공들의 심정이나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준다. 가출 후 작가지망생인 테츠야와 살 때 돈을 빌리기 위해 쇼의 아버지인 동생을 만나는 장소 또한 이 야외무대의 객석인데, 테츠야에 대해 마츠코가 ‘재능있고 다정해’라고 말하자마자 공연하는 가수가 ‘그건 거짓말 거짓말’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마츠코가 테츠야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바로 이어짐으로써 마츠코의 말이 진짜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돈 때문에 호스테스같은 직업으로까지 타락하고 싶지 않다는 말 다음에도 ‘그건 거짓말’이란 가사를 들려줌으로써 그 말 또한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나 사랑받는 아이가’ 라는 가사가 들려오고, 바로 다음 컷에서 마츠코는 무대 위에 올라 ‘될 수 있는 거야?’ 하고 가사의 끝을 맺으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쇼가 수사드라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있는 표현과 같이 이 또한 고도의 감정이입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장치인 것이다.

4)까마귀

계속해서 히카루 겐지에게서는 답장이 없고, 좌절해가는 상황 속에서 마츠코는 검은색 비닐봉지더미 위에 앉은 까마귀 두 마리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까마귀 두 마리는 그녀에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없네’ 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이것은 당연히 실제로 까마귀들이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까마귀를 보고 느낀 마츠코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가운데 그녀 앞에 놓인 까마귀는 현실과 꿈의 괴리를 깨닫게 해 주는 고도의 상징적인 동물인 것이다. 그 다음 장면이 매우 인상적인데, 방에 돌아와 수북히 쌓인 검은색 비닐봉지묶음 더미에 마츠코가 몸을 파묻자 비닐봉지들이 까마귀 떼로 변신하게 된다. 이것은 사와무라가 했던 말인 ‘백조를 동경했는데 눈을 떠보니 시커먼 까마귀가 되어 버렸다’와 일맥상통하면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마츠코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덧붙여 이것은 마츠코가 영원히 히카루 겐지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하게 될 것과 앞으로도 꿈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암시해 준다.


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