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라오스와 방콕 여행의 마지막 여행기다. 이것만 올리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돌아다닌 이야기들을 적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가족여행 사진에, 일본 사진에, 밀린 사진들과 이야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빨리 후다닥 해치우고 싶달까.
하지만 동시에 몰려오는 이 아쉬움은 뭘까. 아마도, 여행기까지 다 써버리고 나서야 내 여행이 진짜 끝날 것만 같아서가 아닐까. 여행기를 쓰기 위해 수십장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고 그 중에 괜찮은 것들을 골라가면서, 그 사진 한 장이 담기기까지의 일들을 떠올리는 게 참 재미있었는데. 한 달 전쯤의 일들을 다시금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해나가며 다시 그 곳 거리들을 누비고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암튼, 1월 8일 오후, 유진이랑 헤어지고 나서 나는 짐 톰슨 하우스까지 씨암패러곤에서 걸어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가야 해서 그렇지 그리 머지 않은 길에 계단도 별로 없는 길이라 가는 길은 수월했다. 운하를 건너는 다리가 나타날 때 까지 걷다가 그 운하를 따라서 조금만 걸어가면 끝.
이렇게 씨암패러곤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운하가 나타난다. 물 색이 더럽긴 하지만 바라보고 있자면 묘하게 평온해진다. 이 부분만큼은 살짝 도쿄 시모기타자와 쪽도 닮아있는 듯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잠시나마 지난 여행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던 순간.
운하를 건너는 다리에는 이렇게 상당히 '방콕스러운' 코끼리 장식도 있다. 일반 다리에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화려하고 자세한 장식이어서 사진으로 남겼다.
이런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가다보면
짐 톰슨 하우스 안내표지와 마주하게 된다.
드디어 짐 톰슨 하우스에 도착! 우선 매표소에 가서 티켓을 끊었다. 방콕만 자세히 나온 가이드북도 없는 처지라 대충 아이폰 와이파이로 입장료가 100바트라는 것만 조사해서 갔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학생은 50% 할인된 금액으로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 브라보! 덕분에 50바트를 절약할 수 있었다. 역시 학생 신분으로 있을 때 더 많이 보고 돌아다녀야 한다니깐. 집의 내부는 혼자서 아무렇게나 관람할 수는 없고, 반드시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관람을 해야 한다. 한국어 안내는 없고 다른 외국어로는 영어, 불어, 일어 가이드가 있다. 나는 당연히 영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새 투어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먼저 기념품 숍을 구경하거나 벤치에 앉아서 쉬면서 시간을 때웠다.
벤치에 앉아서 쉴 때 찍은 짐 톰슨 하우스의 전경. 개인 집의 정원을 이렇게 울창하고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니. 그리고 녹색 나무들이 붉은 색의 집과 잘 어우러져 자연친화적인 인상을 남겼다.
가로로도 찍어본 사진.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기념으로 남긴 사진.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와 같이 있을 때 보다 사진 찍기가 힘들어진다.
정원에 있던 식물들 중 신기하게 생긴 붉은 녀석이 있어서 찰칵. 혼자만 붉은 색이어서 튀기도 했고, 커튼이 드리워진 것 같기도 해서 여러모로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제 때 시작된 영어 가이드 투어. 가이드는 심한 태국식 영어를 구사했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실내에서는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가방을 사물함에 보관해 두어야 한다. 가방까지 보관해 두어야 하나 싶어서 처음엔 어리둥절했었는데, 안에 들어가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짐 톰슨 하우스 내의 아주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식품들은 유리관으로 보호되어 있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유타야에서 가져온 불상을 비롯해서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물건들이 한두가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누군가 나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가져갈 수도 있는 상황.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에 부득이하게 가방을 맡기도록 하고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짐 톰슨이란 사람은 태국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존경을 받는 외국인 중에 한명이라고 한다. 군인 신분으로 태국에 왔다가 그 매력에 빠져서 이 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 특히 태국 실크의 아름다움에 반해 실크의 질 개선과 상품화에 주력했고, 덕분에 오늘날의 태국산 실크가 명성이 자자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아름다운 집에서 10년도 채 살아보지 못하고 행방불명 되었다는 사실도 그를 더 유명하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그는 어디로 간 걸까.

짐 톰슨 하우스를 구경하고 나서는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한인 여행사에서 공짜로 얻어온 지도를 펼쳐보다가, 마침 운하 주변에 마사지샵이 하나 있길래 가서 마사지나 한 번 더 받기로 결심했다. 한국 가면 언제 이렇게 마사지를 받아보겠는가. 내가 찾아간 마사지샵은 P.Pleon이란 곳으로, 고급스러운 마사지샵은 아니지만 나름 가격대비 실속을 자랑하는 십년이 넘은 마사지샵이었다. 1시간짜리 발마사지를 하면 머리와 어깨마사지도 서비스로 해준다길래 그걸로 선택했다. 편한 마사지 의자에 앉아 먼저 차를 한 잔 대접받고, 시원한 젤을 발라가며 하는 마사지를 받으니 온몸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그래, 역시 마지막 날에는 이런 마사지가 제격이지. 그동안 너무 많이 걸었고, 너무 무거운 짐을 들어왔으니까. 가격도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데 카오산의 길거리 마사지보다 훨씬 실력있고 좋았다. 덕분에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는 줄도 모르고 반쯤 졸면서 정말 편한 한시간을 보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태국식 마사지를 받아보고 싶다면 망설임없이 추천.
혼자 있으니 마사지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찍을 수도 없고, 아쉬운 대로 마사지가 끝나고 나서 옆자리에 놓여있던 수건과 연꽃 장식물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보라색 타올과 분홍색 꽃잎의 색 조화가 너무 마음에 든다.
다시 씨암쪽으로 걸어가는 길. 왼쪽에 씨암 디스커버리가 보인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고, 거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지를 정도의 돈은 없었던 데에다 조금 피곤했으므로 나는 카페에 들어가서 조금 쉬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한국인 사이에서 입소문난 가게들만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펼쳐보다가 망고로 만든 디저트 전문점이라는 '망고탱고'에 가 보기로 했다. 씨암스퀘어쪽.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가게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이 쯤에 있어야 하는데. 한참을 헤맨 뒤에야 그 쪽이 최근에 화재가 나서 한 블럭 내에 있던 가게들이 통째로 당분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망고 정말 먹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달래면서 또 어디에 가 볼까 하다가,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고, 방콕 현지 젊은이들로 바글거렸던 '밀크플러스'란 가게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가게 치고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밀크플러스는 가게 이름에 걸맞게 우유를 파는 가게였다. 그것도 그냥 흰 우유만 팔지 않고 저지방 우유, 단맛을 가미한 우유, 석류맛, 초코맛, 딸기맛, 망고맛 등등 다양한 맛의 우유들이 한가득. 우유 뿐 아니라 그 우유들로 만든 쉐이크 음료들도 많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각종 토핑을 얹은 토스트들이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석류맛 우유쉐이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격은 60밧. 카오산로드에서 수박주스를 20밧에 사 먹은 것에 비하면 착하지는 않은 가격이다. 수많은 현지인들 속에서 외국인은 나 단 한명. 나는 주문한 쉐이크를 받아다가 가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홀짝이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정하고 일기를 쓰면서 휴식을 취했다. 방콕의 젊은이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이것이 내가 마신 석류맛 우유쉐이크. 근데 이것, 정말 맛있었다. 우유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텁텁한 맛 없이 깔끔하고 상큼하다. 역시 괜히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게 아니었구나, 이 가게. 정말 한국에 분점 하나 차려서 매일 만들어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맛. 방콕에 또 가게 된다면 꼭 또 먹으러 찾아가고 싶다.
가게 내부는 '우유'를 파는 가게임을 강조하는 장식들이 곳곳에. 심지어 화장실 문에도 소 캐릭터 그림을 붙여놓았다. 귀여워!

밀크플러스에 나와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씨파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역시 씨암 스퀘어 쪽에 있어서 밀크플러스에서 그닥 멀지 않았다. 영어 메뉴가 있긴 하지만, 몇가지 주요 메뉴들만 소개한 것 뿐이어서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태국어를 알 길이 없는데. 결국 영어 메뉴에 소개된 것 중에서 예산에도 맞고 맛도 있어 보이는 계란과 햄을 넣은 국수를 주문했다.
이것이 내가 주문한 국수. 그릇째 구워서 나온듯 했다. 전혀 짜지 않고 담백한 데에다 동남아 특유의 향도 없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를 이 정도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우리학교 학식 사 먹을 정도의 돈만 내고 즐길 수 있다니, 태국은 정말 천국이다. 정말 진지하게 태국으로 교환학생 왔어도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들도 싸고 맛있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물건들 중에 없는 것도 없고, 저렴한 비용으로 주변 나라들도 쉽게 여행할 수 있으니 교환학생지로는 정말 적합하지 않은가!
이것은 후식으로 시킨 것. 망고와 코코넛 연유를 부은 찹쌀밥이다. 찹쌀밥과 망고를 같이 내온다는 것이 좀 신개념이긴 하지만 맛있다. 아니, 찹쌀밥이야 그렇다 치고 나는 내가 코코넛 연유를 밥에 부은 것도 맛있게 먹을 줄은 몰랐다. 어렸을 때 간혹 우유에 밥말아 먹는 아이들을 보면 심하게 비위가 상하곤 했었는데, 이건 정말 맛있었다. 망고의 상큼함과 찹쌀밥의 쫀득함, 그리고 코코넛 연유의 달달함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 근데 적어놓고 보니 죄다 맛있다는 평밖에 없다. 왠지 다들 나에게 맛없는게 뭐냐며 내가 맛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듯.....

저녁을 실컷 여유부리며 먹고 나서는 칼립소 쇼가 열리는 아시아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씨암에서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어짜피 전철역 구간이 우리나라보다 짧기 때문에 걸을 만 했다. 다만 좀 많이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물었다는 게 문제지....
마지막으로 찍어본 씨암패러곤. 바이바이 씨암, 다음에 또 보자꾸나.
건너편 씨암스퀘어 쪽도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아보고,
아시아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은 차들만 헤드라이트를 키고 쌩쌩 지나갈 뿐, 인적은 정말 드문 길이었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또 여자애가 겁도 없이 그런다고 뭐라고 한소리 하셨을 법한. 위의 사진은 딱히 방콕다운 분위기는 없지만, 도로에 차의 불빛이 번져나가는 게 마음에 들어서 굳이 여태껏 간직하고 있다가 올린다.
뒤쪽을 보면 이렇게 차에서 나오는 붉은 불빛들로 물들어 있는 도로. 도시의 밤은 가끔씩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방콕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술집들이 즐비한 거리도 나타났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아시아호텔. 카오산의 여행사에서 예약하고 받은 종이를 내밀자 이렇게 티켓으로 바꾸어 주었다. 가운데 부분은 자신이 간직할 수 있는 티켓이고, 왼쪽 부분은 들어갈 때 직원이 가져가는 부분, 그리고 오른쪽 부분은 free drink 쿠폰이다. 생맥주나 커피, 탄산음료나 주스를 한 잔 무료로 즐기며 관람할 수 있다. 나의 초이스는 당연히(!) 생맥주.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엔 가벼운 맥주 한잔에 어울리니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석. 서너명이 한 테이블을 공유하며 앉는 구조다. 붉은 테이블과 붉은 조명이 너무 예뻐서 카메라를 들 수 밖에 없는 풍경. 영화 물랑 루즈에서나 볼 법한 이런 붉은 조명의 분위기에 공연 시작 전부터 두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쇼가 시작되었다. 트랜스젠더들이 약 한시간 동안 펼치는 너무나도 유쾌하고 신나는 카바레. 팝송이나 뮤지컬 넘버, 아시아 전통 노래 등에 배우들이 립싱크를 하며 연기를 펼치는 쇼인데, 어쩜 그리도 입이 가사와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수많은 외국어를 다 구사하는 건 절대 아닐텐데. 그 프로정신에 한 번 놀라고, 화려한 무대에 또 한 번 놀라고, 여자인 나보다 더 예쁜 트랜스젠더들의 외모에도 놀라고. 놀라움과 화려함의 연속인 공연이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칼립소 쇼에서의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감상하시길.
사진이 좀 많으니 스크롤 압박도 사전에 양해를 구합니다.



옛 중국 노래에 맞추어 결혼식을 연기하던 장면.
내가 보기엔 이 언니(?)가 제일 예뻤다. 사진이 잘 못나온듯...


원더걸스의 노바디도 있었다! 정말 반가운 마음에 찰칵찰칵. 한국인 관광객들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칼립소 쇼에 원더걸스라니. 방콕의 큰 서점에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들에서도 죄다 한국 아이돌 특집기사들을 다루고 있어서 놀랐었는데. 한류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무대.

다음으로는 일본 전통 노래에 맞추어 1인 연기가 펼쳐졌다. 저 분, 엄청 코믹한 연기로 모든 관중들의 환호와 사랑을 온몸으로 받았다. 뭔가 일본적인 것으로 엄청난 웃음을 산 무대. 일본사람들이 본다면 좀 불쾌할 수도 있겠는데 싶었는데 역시나, 마침 옆에 앉아있던 일본인들이 뭐야 왜 일본 노래는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하는거야, 라고 궁시렁 궁시렁.
마돈나처럼 꾸민 글래머러스한 분도 나타나주시고,
한국의 부채춤도 등장. 아리랑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데 나름 잘한다. 일본 전통 노래에 맞춘 연기는 심하게 우스꽝스러웠던 반면, 부채춤 무대는 매우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내 앞에 앉은 백인 노부부가 공연 중 단 한번도 카메라를 들지 않다가 유일하게 이 부채춤 장면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으니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역시 또 옆자리에서 일본인들이 궁시렁 궁시렁. '뭐야 한국건 멋지게 하는데 왜 일본노래론 바보같은 연기를 펼치는거야' 라고.

그림자와 조명을 이용해서 너무나도 우아한 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했다.
가장 인기쟁이였던 이 분, 너무 재밌었어요! 나중에 기념사진을 같이 찍긴 했지만 여기엔 올리지 않으리라.

벌써 한시간이나 되었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공연은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너무나도 흥겨웠고, 화려하고, 재미있었다. 화려한 공연의 막이 내림과 함께, 나의 방콕 시내에서의 일정도 막을 내렸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향해 떠나야 할 시간.
나는 아시아 호텔이 있는 랏차테위 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파야타야 역까지 걸어갔다. 그 역에서부터 운영되는 에어포트 레일을 이용하기 위해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도 350밧밖에 하지 않지만, 수중에 그정도의 돈도 없고, 무엇보다도 훨씬 더 저렴한 40밧의 가격에 공항까지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항 철도를 이용했다. 또한 덕분에 여행 중 새로운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고 말이다. 티켓을 사기 위해 40밧을 내미니 손에 빨간 동그라미 모양의 전자칩이 박힌 토큰이 주어졌다. 카드도 아니고 토큰이라니. 도심을 떠나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은 재미를 안겨주는 방콕이었다. 
공항철도를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찍은 사진. 일반 열차를 타고 파야타야 역에서 공항까지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1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안내판을 보는데 세상에,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타야 하는 비행기가 무려 한시간 반이나 연착된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원래 방콕 현지시각 새벽 1시 55분에 뜨는 비행긴데... 새벽 세시가 넘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짜증났지만, 자칫하면 상하이에서 연결 항공편을 타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날 더 아찔하게 했다. 예정대로의 상해에서의 대기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삼십분 내에 상해공항에서 트랜스퍼를 할 수 있을까? 나 한국에 내일 도착할 수 있긴 한걸까? 체크인을 위해 오랜 시간 긴 줄을 서며 기다리면서 온갖 상상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담당 직원에게 물어보니 상해 공항 사정상 연착이 된 거라면서 도착하면 최대한 제 때 환승편을 탈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줄거라면서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자기로썬 확답은 줄 수 없다곤 했지만. 그래도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 내 잘못도 아니잖아. 만약 비행기를 놓치게 되면 그 다음편 비행기를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태워주거나, meal ticket이라고 한 장 주지 않겠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벽 세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까지 납득한 건 아니었다. 수중에 있는 돈도 다 떨어졌고,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로 여행 막바지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닌 탓에 지쳐있었을 뿐더러, 겨울 옷 한 벌 없던 내게 새벽 세시 반까지의 기다림은 너무 가혹했다. 게다가 공항 대기실은 겨울인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방콕답지 않게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적어도 방콕 공항에서만큼은 따뜻하게 있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덕분에 새벽 세시 반까지 나는 공항 의자에서 눈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추위에 바들바들 떨어야 했다. 아, 돈 많이 벌면 환승항공기는 절대 타지 말아야지.
마지막 순간까지 공항에서 추위에 떨며 체력을 소비한 나는, 마침내 도착한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완전히 골아떨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도 느끼지 못하고 잠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륙하는 순간도, 음료도, 기내식도 모두 놓치고 나는 정말이지 거짓말 안하고 상해에 착륙할 때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sleep like a log'를 몸소 체험했달까. 비행기 창 밖으로 방콕을 내려다보며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은 결국 연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영상 30도의 나라에서 다시금 영하 16도의 나라로 돌아왔다.


참 많은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만원 한 장 빌리지 않고 모든 여행 경비를 내 돈으로 지불한 여행,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떠나서 혼자 돌아온 여행,
싱가폴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가 본 동남아 여행,
처음으로 우리나라와 계절이 다른 곳으로 떠난 여행,
뚝뚝부터 수상버스까지 거의 모든 교통수단은 다 이용해 보고,
여러 번 국경을 넘고 중국에서 환승까지 하느라 한 번의 여행으로 무려 열 개의 도장을
여권에 남길 수 있었던 여행.

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가슴 한켠에 로망으로 간직해 두고 있던 카오산에 내가 서 있었고,
말로만 듣던 메콩강을 직접 내 두 눈으로 가득 담기도 했다.
꿈이 현실이 되고, 사진 속 풍경이 눈 앞의 실체가 되는 황홀한 경험.

남들에게 아직은 낯설고 친숙하지 않은, 그만큼 다른 나라들에 비해 때가 덜 묻고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라오스를, 더 변해버리기 전에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복이었다.
아직까지도 공동체적 생활을 구현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 나가고 있던 그들의 모습, 그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에 온몸이 짜릿하게 울릴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아직 더 배우고자 하고 꿈꾸고 싶어하는 스물 넷 내 젊은 나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의 한 순간에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거대한 한 획을 그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멋진 여행의 순간을 함께 해준,
카메라로, 두 눈으로 그 감동의 순간에 서 있는 나를 담아준,
여행의 동반자였던 유진이에게 무한 감사와 애정을 보낸다. 함께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 -








Posted by 강지님

루앙프라방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자 마지막 아침. 우리는 아침시장을 먼저 구경하며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갖은 식재료며 음식들을 파는 곳이 들어선다는 아침시장. 정확히 몇시부터 몇시까지 열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전날 오후에 같은 길을 걸었을 때에는 생활용품을 파는 상인과 과일을 파는 상인 몇 말고는 별로 없었다. 활기찬 시장을 보고 싶다면 아침에 갈 것을 추천.

이른 아침부터 북적북적한 아침시장. 관광객은 거의 없고 거의 현지인들만 있다는 점이 아침시장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한라봉과 비슷하게 생긴 과일을 발견! 궁금했지만 사서 먹어보진 않았다.
이제 밑에부터는 살짝 비위가 약한 분들에겐 무리일 수도 있는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난 경고했음...
완자같은 것들을 구워서 파는 데도 있고
여긴 정육점. 사진 뒷쪽의 창자가 ....
정말 털만 뽑아서 파는 닭. 저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 닭들은 왜이리도 다리가 긴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닭들도 원래 다리가 긴데 내가 잘 몰랐던 걸까?
생선을 가지런히 바구니에 담아놓은 모습이 인상적.
돼지머리를 제삿상에 올려놓는 모습은 간접적으로나마 접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코만 눈 앞에서 보는 것은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하. 이 곳 사람들도 곱창이나 순대를 즐겨 먹는 것 같더라.
저렇게 털도 뽑지 않은 발굽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그렇게 아침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친구랑 쌀국수룰 하나 사서 또 나눠먹었다. 고수가 아주 약간 들어있었지만 피해먹으면 맛있었다. 어쩌다 한두조각 들어가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고.
이날도 된장같은 것을 살짝 풀어서 매콤한 국물로 즐겼다. 쌀국수들의 국물이 정말 수준급! 우리나라에서 먹는 베트남식 쌀국수 국물이 아니라, 정말 그냥 쌀국수면이 들어가서 쌀국수랄까, 국물 맛은 전혀 다르다. 진하게 우려낸 우리식 닭곰탕 국물에 더 가깝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아침시장을 돌아다니 후 아직 배가 차지 않아서(겨우 국수 한 그릇을 둘이 나눠먹었으니) 밤에 야시장이 시작되는 쪽에 있는 호텔 1층의 베이커리에서 망고케이크를 하나 사서 나눠먹었다. 여기서 와이파이로 인터넷도 실컷 즐기고, 라오스 같지 않은 묘한 카페 분위기도 즐기고.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오후 한시 십분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많았다.
카페의 내부. 진한 갈색의 나무로 된 가구나 계단이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에서 책을 읽으면 꿀맛일거야.
숙소에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짐을 싸면서, 어젯밤 사 둔 두 장의 엽서를 썼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주소를 더 많이 알아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 장은 집에, 다른 한 장은 라오스 우표와 도장이 찍힌 엽서를 꼭 받아보고 싶다던 초롱이에게 썼다.

엽서를 다 쓰고는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어젯밤 조금 챙겨두긴 했지만, 완전 떠나는 것이라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침대 밑도 여러번 살펴보고, 옷장이나 열어보지도 않은 서랍들을 열어보면서도 뭔가 빼먹은 것 같은 허전함. 매번 여행지의 숙소에서 떠날 때 드는 이와 같은 허전함은 어쩌면, 마음 한 구석을 남기고 오기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인 짐은 모두 챙겨도 그 장소에 정들어버려 좀 더 머물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남기고 올 수 밖에 없는 법.

짐을 모두 챙기고, 남은 시간동안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체크아웃을 하며 숙소 주인에게는 12시 정도까지 짐을 맡겨줄 수 없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승락한다. 메인스트릿 쪽을 걷다가 우리는 왕궁박물관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왕궁박물관. 예전에 왕이 살던 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 내부를 구경하는 것은 무려 3만낍이지만, 건물들과 정원을 구경하는 비용은 공짜. 그래서 우리는 외부만 열심히 구경하기로 한다. 현금이 거의 없었으므로.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 루앙프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원의 양식을 하고 있었다.
야자수들이 심어진 정원에서 찰칵. 지금 보니 통크고 얇은 바지에 여행자 가방에 제대로 여행자 포스 나는듯.
이렇게 호수도 있다. 하늘이 진한 푸른색이었다면 정말 아름다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날 하늘은 흐린 편이었다.
이것이 현재 왕궁박물관 전시실로 쓰이는 건물.

왕궁박물관 등을 보고 와서 다시 짐을 찾고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던 중, 우체통에 엽서를 넣어 보내기로 했다.

라오스의 우체통은 사진에서와 같이 노란색이다. 이거 말고 조그마한 우체통도 있는데 그것은 무슨 새장같이 깜찍하고 너무 예쁘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방비엥에선 봤는데 루앙프라방에선 보이질 않더라. 역시 눈에 밟힐 만한 건 그때그때 사진으로 남겨두어야 해..
숙소에 맡긴 짐을 찾고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조마 옆골목 숙소거리. 여러모로 이 날 오전 하늘이 흐렸던 게 안타깝구나...
큰 길가로 나오자마자 큰 가방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를 보고 뚝뚝 기사들이 흥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 우리에게 말을 건 뚝뚝 기사에게 처음 3만오천낍 정도를 부르던 것을 깎아 2만 5천낍으로 공항까지 가게 되었다. 오늘 여행 끝나가면서 라오스 돈 거의 없다고. 진짜 이거랑 비엔티엔서 이동할 돈 빼면 거지라고 플리즈 섞어가면서 졸랐더니 의외로 쉽게 오케이. 그렇게 뚝뚝을 타고 루앙프라방 중심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두근두근.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공항은 정말 공항같지 않게 생긴 공항이었다.분명 관제탑은 있는데 도저히 공항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규모. 미국 국내선 이용할 때에도 이것보단 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건 나름 international airport인데...
라오어와 영어로 쓰여진 간판. 진짜 떠나는구나.
이것이 우리를 비엔티엔까지 데려다 줄 Lao Airlines의 비행기이다. 한사람당 택스 포함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2천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이 보고 즐기기 위해선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험한 산길을 열시간 넘게 버스로 타고 이동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거라 판단했기에 아깝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자그마한 항공사의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보는 경험이 흔하지 않으니까. 이마저도 방콕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 타려던 거 값이 두배로 뛰길래 국내선만 이용하기로 한건데.

4-50분 정도의 짧은 비행이었기에 기내식은 없었지만 대신 이렇게 물과 함께 스낵을 주더라. 근데 이 스낵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바나나, 망고, 타로, 호박, 오이 등을 말려서 튀긴 듯한 과자였는데, 하나같이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과자같은 맛을 냈다. 파인애플이 제일 맛있었고, 저 바나나도 감동했던 것이 우리나라 안주용 바나나칩과는 달리 진짜 바나나 맛이 났다. 나와 내 친구 모두 왜 루앙프라방 공항엔 면세점 만들어서 이런 과자 안파냐고 했을 정도.

그리고 이젠 비행하면서 찍은 사진들 퍼레이드.


저 험한 산길을 우리가 다섯시간 가량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넘어온 거라고...... 그 험한 여정을 이렇게 하늘로 넘으니 간단하게 생략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놀라운 것...
그리고 나타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낸 풍경. 꽝시폭포와 같은 새파란 물빛 위에 수많은 섬들이 다닥다닥 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이건 남겨야겠다 싶어 찰칵, 또 찰칵.나중에 아이폰 지도로 찾아보니 이게 댐이란다.
한번 더 찍어본 사진. 물빛은 이게 실제와 제일 흡사하게 나왔다. 물 색깔이 저럴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 라오스를 여행하는 이라면, 이렇게 국내선 비행기도 꼭 타볼 것을 권하고 싶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라오스는 또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기에. 내 생애 가장 멋졌던 비행이다.
비엔티엔에 가까워지면서 나와 내 친구 모두 우리나라 지도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했던 모습. 정말 우리나라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저렇게 강이 지나칠 정도로 굽이굽이 흐르는 모습을 보며 나와 내 친구는 한국지리때 배웠던 우각호나 침식퇴적 등을 떠들어댔다.

착륙할 무렵에 바라본 비엔티엔의 모습들. 논이 있다는 게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논 자체의 모양은 또 많이 다르다.
그리고 착륙. 버스로는 10시간 + 알파가 걸린다는데 그 모든 험난한 여정을 단 50분만에 끝내버린 라오항공 비행기. 비엔티엔 공항도 국내선 부분은 이렇게 초라했다. 짐이 나오는 부분도 일반 국제공항들처럼 돌고 도는 게 아니다. 한 번 나오면 그냥 떙. 자기 짐 나오면 짐들 쌓이기 전에 재빨리 들고 나가는 게 최고.
이건 비엔티엔 국제선 쪽.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공항 간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공항 바로 앞에서는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는 비쌀 것 같아서 뜨거운 햇빛 아래 공항 입구쪽까지 걸어가다 보니 뚝뚝이 보였다. 여행중 엄마께 전화로 부탁해 끊어놓은 방콕행 나이트버스 티켓을 찾기 위해선 비엔티엔 시내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흥정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플리즈 몇번 섞은 끊에 2만낍이란 저렴한 가격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저렴한 만큼 뚝뚝의 상태도 여태껏 탔던 것들 중에서 최악이었고 속도도 잘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싼 게 어디인가.

비엔티엔 지도도 자세히 되어 있는 것은 없는 데에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문판 론리플래닛이어서 티켓을 예매해 둔 한국여행사를 찾는 데 조금 헤매었다. 십오분 정도를 '삽질'한 끝에 겨우 찾아서는 무사히 예매해 둔 티켓을 찾았다. 나이트 버스 픽업차량이 오기까진 한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에, 우리는 짐을 맡겨달라고 부탁한 후 길거리로 나왔다. 일단 뒤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는 게 급했으니까.
우리가 들어간 곳은 NAZIM이란 중동음식점. 라오스에서 웬 중동음식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름 여행사 직원에게 이 근처 맛집 좀 추천해달라고 물었을 때 제일 먼저 나온 가게 이름들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너무 배고파서 더 물색할 기운도 없었다. 우선은 난 하나와 치킨탄두리커리를 시켰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카레를 먹으려면 기본 만원에서 만오천원은 훌쩍 넘기는데, 여긴 싸다. 정말 음식 싼 맛에 행복해지는 동남아...
좀 부족하다 싶어 추가로 주문한 치즈난. 이게 진짜 맛있었다. 그냥 난보다 훨씬 도톰한 데에다 위에 발라진 치즈가루와 치즈조각들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 그냥 뜯어먹기만 해도 너무 맛있었다. 만족스러웠던 식사.

밥을 먹고 나서는 잠깐 강변 쪽을 산책하기로 했다.
강변이라고 하기엔..... 이런 풍경이었지만. 한창 공사중이어서 메콩 강변과 같은 '강' 같은 느낌은 도저히 느낄 수 없었다. 대신 묘하게 중동의 한 모습이라고 하면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 나와 내 친구 모두 이 사진 딸랑 하나 올리고 중동 여행 다녀왔다고 거짓말 해도 사람들 믿을 것 같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그 농담은 한국에 돌아와서 싸이월드 다이어리로 현실화 되었다.)
우리가 식사를 했던 식당이 있는 거리.
프랑스 식민지였음을 알 수 있는 흔적.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이 곳 수도 비엔티엔에선 모든 길 이름이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표시되어 있었다. 파리 이후로 처음보는 저 Rue 간판.
시간도, 돈도 조금 어정쩡하게 남아있어서 디저트라도 먹다 돌아갈까 싶어 근사해 보이는 한 카페로 들어갔다. 근데 내부가 환상적. 벽들을 원색으로 칠해두었는데도 전혀 눈이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노란 조명가 어우려져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소품이나 가구들도 다 멋있었고. 그리고 한 쪽 구석에 있는 책꽂이에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읽고 있는 책과 바꿔갈 수 있게 해놓은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늙어서 이런 카페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
우리가 가진 돈으로 시킬 수 있었던 가장 비싼 디저트, 바나나 팬케이크.한국처럼 팬케익 위에 조린 바나나를 얹어주는 게 아니라, 반죽 자체에 바나나를 놓고 같이 구워낸 스타일이었다. 맛은 가격대비론 별로였지만 그래도 어짜피 환전도 안되는 라오스 돈, 덕분에 조금이나마 배도 더 채우고, 분위기 좋은 카페서 좀 더 쉴 수 있었으니 만족.

카페에서 음식 나올 때 까진 느긋하게 쉬다가 음식이 나오고부터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부랴부랴 허겁지겁 털어넣은 후, 나이트 버스 픽업차량을 타기 위해 다시 여행사로 떠났다. 픽업하러 온 뚝뚝을 타고 국경지역까지 가면서 마지막으로 라오스를 바라보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이별의 순간에 해까지 지면서 더욱 걸맞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것도 아쉬운 마음에 저무는 주홍빛 햇빛마냥 불을 지폈다.
나이트 버스 타는 곳에서 찍은 달 사진. 우리나라보다 위도상으로 남쪽이어서 볼 수 있는 저 신기한 풍경. 초승달이 누워있다 !!!!! 너무 신기해서 최대한 클로즈업 해서 찍었다. 조막만하게 나오지만 달이 누워있는 모습은 선명하게 나왔으니 대만족.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여행사진 중 하나. 주황색이 아닌 저런 갈색과 남색이 그라데이션 된 하늘은 또 새롭더라. 그 가운데 있는 야자수부터 맨 위에 누운 달까지. 실제로 바라보는데 얼마나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던지. 어찌 보면 그저 한 외국의 버스정류장에서 해가 지는 모습일 뿐인데.

저 숨넘어가듯 사라지는 한 줌 햇빛처럼 우리의 여행도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방콕까지 가는 버스에서는 아이언맨2가 한참을 시끄럽게 틀어져 있다가 꺼졌고, 나는 마이클 잭슨의 사후 앨범 수록곡 중 제일 아끼는 'Best of Joy'를 여러번 반복해서 듣다가 잠에 들었다.담요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수면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 눈가리개로 빛을 차단하고서.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감상적이 되면서 돌아가신 이모나 한국 돌아가서 여행 이야기 해주고픈 사람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막연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꿈으로 넘어가는 그 언저리의 허상이었을지도.
Posted by 강지님

미니밴을 타고 삼사십분을 달리면서 솔직히 걱정도 했었다. 원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는 말이 그대로 실현될까봐. 꽝시폭포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오히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내 안에서 해칠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른 이들의 블로그 등으로 보아온 사진들은 결코 포토샵 등으로 꾸며지고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웠던 사진들 조차도 실물의 아름다움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던 것.
이 모습을 처음 본 순간 떠오른 단어는 우습게도, 또 적합하게도 '선녀탕'이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계단식 카르스트 지형. 물의 색이 저렇게 터키색빛으로 푸를 수 있는 것도 물이 석회수이기 떄문이란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물에 독극물이라도 들어있을 것 같다. 눈 앞에 있는 풍경을 그대로 현실로 인지하기 어려우니까.


신이나서 나도 물에 들어가서 놀 수 있도록 검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비현실적인 물속에 몸을 담갔다.
현재 내 페이스북 메인인 사진.
셔터를 오래 열어 빛이 지나치게 들어간 사진이지만, 나름 비현실적인 공간에 걸맞게 나온 듯한 사진. 그래서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이 사진 보면 제대로 신나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트위터와 카카오톡의 메인사진으로 남은 사진.
딴짓하는 와중에 찍힌 사진이지만 뒤에 다리도 나오고 물빛도 마음에 들어서 좋다.
나 이상으로 사진가 정신을 가지고 계셨던 호주 억양의 한 할아버지께서 찍어주신 사진. 노부부가 함께 여행중이었는데 물 속에 들어간 부인 사진을 찍어주려고 그 나이에 다소 미끄러울 수 있는 물 속 길을 헤치고 걸어갈 정도의 열정. 우리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때에도 직접 물 속까지 들어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주셨다. 덕분에 이런 멋진 단체샷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물 속에 빠져 마냥 즐거워하는 부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행복해하던 할아버지의 미소가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저 나이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함께 이런 멀고먼 동남아까지 여행올 수 있다니. 저렇게 늙고싶다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물 속 길을 헤치고 걸어가 섰기에 남길 수 있었던 사진들.

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에 내가 있었음을 조금이나마 더 확실하게 기억하게 되는 건, 결국 사진. 믿기지 않다가도 사진을 보면 이내 끄덕끄덕. 아 내가 정말 잠시나마 저 눈부심 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게 맞구나, 하고.
한시간 반 정도 꽝시폭포에서 머물다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작은 마을을 들린다. 머물렀던 시간은 겨우 십 분 남짓? 근데 이곳, 참 별로다. 볼것도 없는 이 곳에서 우릴 맞이하는 건 라오스 중에서도 정말 못살 것 같은 집들과, 아직 한참 어린 아이들이 조잡한 기념품을 사달라며 올려다보는 모습들. 우리의 발길이 이들의 삶을 때묻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을에서 제대로 남길 수 있었던 라오스의 닭 사진. 이 곳 닭들은 하나같이 롱다리이다. 마치 하얀색 부츠를 신은 듯한 저 길게 뻗은 다리의 모습. 그저 감탄, 또 감탄. 살짝 징그럽기도 하고....

실컷 구경을 하고 루앙프라방에 돌아와서는 먼저 자전거를 반납하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먹자골목으로 이동했다. 야시장이 열리는 메인스트릿에 있는 호텔 1층의 베이커리 옆길로 이렇게 먹자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각종 꼬치류, 야채부페, 쌀국수 집들이 있어 골라먹기에도 좋다.
먹자골목의 모습.
인터넷으로 사전조사했던 먹자골목의 쌀국수에 도전해 보기로. 둘이서 한그릇을 시켜 나눠먹기로 했다.
이게 그렇게 해서 나온 쌀국수. 고수가 들어가 있지도 않고 정말 우리 입맛에 딱인 국수였다. 국물은 진짜 고기를 푹 삶아 고아낸 것이라 진하고 든든했으며, 고기나 양배추, 쌀국수면도 너무 맛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국수에 된장같은 것을 풀어먹기도 한다는 것인데, 도전정신으로 조금은 수상해 보이는 된장을 국물에 조금 풀어내고 먹으니 훨씬 더 맛있었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고 조금은 걱정도 되었는데, 국물이 적당히 매콤해 지면서 얼큰하고 개운해서 좋았다. 약간 딴딴면과 비슷한 맛이기도 했고. 추천!
각종 꼬치들을 파는 노점상.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고기들부터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을 정도로 수상하게 생긴 꼬치들까지 다양하다. 우린 여기서 닭가슴살 꼬치를 하나 사서 칠리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큼직한 닭가슴살 꼬치가 싸고 맛있어서 대만족.
이건 밥먹고 마지막으로 야시장을 돌며 눈에 밟히던 것들을 가격흥정을 통해 싼 값에 사고 난 후 도전해본 길거리 먹거리. 찰밥을 얇게 펴서 간장 같은 것을 발라내고 구워낸 것이다. 짭쪼롬해서 약간 일본식 먹거리 같기도 했던. 한 번 먹어보시길.

숙소에 돌아올 때 맥주며 다른 안주들을 사가지고 들어와 홀짝이면서 우리는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여행의 끝이, 헤어져 각자 한국과 홍콩으로 돌아갈 순간이 머지 않음을 감지하고 있었으니까. 따뜻한 날씨와 비일상의 짜릿함과 또다시 안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본능적인 이유. 바로 이날 밤이 귀국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숙소에서 마음 편히 침대에서 잘 수 있는 마지막 밤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다음날 또다시 비엔티엔에서 방콕까지 나이트 버스를 타야했고, 나는 방콕서 만 하루를 보낸 후 새벽 2시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이렇게 또다시 이틀 동안은 침대에서 이불 덮고 제대로 자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에 대한 아쉬움을 더했다.

Posted by 강지님
그리고 다음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 전인 5시 반쯤 우리는 일어났다. 아침을 여는 탁밧행렬을 보기 위해서는 아침보다 더 빨리 하루를 열어야 했으니까. 탁밧행렬이란 아침에 스님들이 바구니를 들고 공양을 하러 나서는 행렬을 의미힌다. 라오스의 많은 곳에서는 2일에 한 번 정도로 간략화되어가고 있다지만, 이 곳 루앙프라방에서만은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 이 행렬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숙소를 나서서 바로 있는 큰길가로 나가니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공양에 참여하기 위한 찰밥이나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아직 어두컴컴한 길거리에는 그러한 상인들과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외국인들, 그리고 공양을 하기 위해 돗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라오스인들과 외국인들로 이른 시간 치고는 꽤 붐벼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기다림 끝에 어둠을 가르는 빛처럼 주황색 천을 두르고 나타난 스님들의 행렬.

라오스 남자들은 일생에 꼭 한번은 스님으로 살아야 한단다. 지금 저 사진속에서 주황색 천을 두르고 걸어가는 어린 스님과, 그들에게 밥을 퍼서 주는 라오스 남자 모두. 한 떄 스님이었거나, 스님인 사람들.
그들은 모두 맨발로 걷고 있었다.

밥을 퍼서 주고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호기심에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삶과 종교관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그 조용한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용한 행렬이 끝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구경하느라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했던 우리는 조마베이커리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다들 맛있다고 추천하며, 여행하면서 한 번쯤은 식사를 하러 찾게 된다는 이 곳. 우리도 그 한번을 가 보기 위해서 조마를 찾았다.
통통한 베이글부터 키쉬, 각종 파이류들이 이른 아침부터 구워져 나오고 있었다. 전날 다 팔지 못하고 남은 빵들은 아침에 무려 50%나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할 것을 추천.
메뉴판을 보면 빵 이외에도 각종 음료나 샐러드 등의 메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문을 하고 올라와서 본 2층의 모습. 아직 이른 아침이기도 했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1층 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2층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노란색 갈색의 벽과 노오란 등,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이 어우러져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것들. 자그마한 스팀밀크가 딸려나오는 아메리카노와 하와이안피자, 그리고 50% 할인된 어제 만들어진 초코머핀. 초코머핀은 이미 구워져 식은지 오래일텐데도 다시 전자렌지나 오븐에 넣고 살짝 익혀주었는지 갓 구워진 머핀마냥 촉촉하고 따뜻했다. 아메리카노에도 그냥 우유나 프림이 아니라 스팀밀크를 주어서 또 얼마나 좋았는지. 이러한 섬세한 배려들에 그저 감동, 또 감동.
다들 맛있다고 추천한 피자는 소문 그대로 맛있었다. 엄청 도톰하고 토핑도 아낌없이 얹어져 있는데다, 빵 자체가 담백해서 아침부터 먹는 피자치고 담백하고 든든했다. 정말 만족스러웠던 한 끼 식사.
아침커피를 즐기는 내 모습.

커피 한 잔을 당신 앞에 내어놓기 위한 노력들. 커피 한 잔에 담겨져 있는 그들의 이야기.
이런 일러스트까지도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조마베이커리.
이런 가게가 한국이나 일본에도 있다면 아마 주인 눈에 띄는 단골이 되고자 열심히 들락날락거렸을 거다.

여유로운 아침식사 이후 우리는 숙소로 들어가 옷을 좀더 얇게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하루종일 돌아다닐 준비를 한 후 숙소를 나섰다. 루앙프라방을 돌아다니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고자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싼 곳을 찾으려는데 조금의 예외 없어 모두 15,000낍이란다. 결국에는 한 대여소에서 빨간색의 자전거 두 대를 빌려 한 대씩 나눠타고 루앙프라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루앙프라방의 길거리와 메콩강변을 야자수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자전거 타는 기분이란. 이토록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목이 말라서 커피쉐이크를 사 먹기도 했고, 이따 오후 일정으로 꽝시폭포투어를 예약하기도 했다. 투어는 50,000낍.

햇빛 쏟아지는 거리. 차도 많지 않고 자전거 타기엔 딱이다.
메콩강.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행위가 내게 안겨준 청량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첫번째로 우리가 자전거를 세우고 찾아간 곳은 '왓 씨앙통'. 이 곳 루앙프라방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원이다. 가장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명소라기엔 볼 것도 많지 않고 작디작은 곳. 엄청난 기대를 하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 분명하나, 태국과 닮아 있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원의 분위기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장식들도 여성스럽고 우아한 맛이 있어 좋았다. 입장료는 20,000낍.
다른 각도로 찍어본 메인 건물.
메인 건물 옆에 별당처럼 세워져 있던 건물. 아쉽게도 설명서가 하나도 있질 않아서 무슨 건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건물 한 쪽 벽에 있던 장식. 우리나라 나전칠기 벽장같기도 했다. 이런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이 곳곳에 있는 사원. 이 그림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

이런 장식이 매달려 있는 것은 살짝 중국과 닮아있다.
이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 암튼 벽에 있는 장식. 아름다워서 그 앞에 한참을 서 있게 되더라.
양쪽에 색색의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사원 내의 탑.

왓시앙통을 나와서는 다시 계속 자전거를 타고 청량감을 만끽하며 빙글빙글빙글.
메콩강변.
진한 파랑하늘과 야자수가 우거져 있는 모습이 순간 배낭여행이 아니라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불러일으키더라.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을 받은 듯한 건물. 하얀 외벽과 테라스가 있는 양식.
여기저기 오토바이와 자전거, 뚝뚝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길거리.
자전거를 잠그지 않고 세워두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여긴 중심지에서 꽤 벗어나 매우 한적던 거리.
정면에 우체국이 있는, 가장 넓고 큰 길거리. 나름 차들이 꽤 지나다니는 길가인데 사진속에선 타이밍이 좋아 완전 텅텅 빈 공터처럼 나왔다.
또 다른 사원. 여기도 메인 건물을 구경하는 데에는 또 돈을 내야 하길래 과감히 포기하고 겉에만 구경. 이곳도 매년 입장료가 오르고 이런 걸로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듯. 입장료가 내용 대비 너무 비싸서 포기해도 아깝진 않았다.
묘하게 앙코르와트 분위기가 나길래 마음이 들었던 사원의 한 쪽 구석.
세로로도 찍어보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주황색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곳곳에 유명하진 않은 나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나만의 기억을 만들고, 같은 장소도 다르게 추억하며 마음 한 구석을 남겨둘 수 있는 것.
길가에 세워진 나와 유진이의 빨간 자전거. 앞에 바구니가 달려있어 편했다. 빨간색인 것도 마음에 들고. (사진빨도 잘받았다)
자전거와 함께 기념사진.
반짝거리는 강물이 너무 아름다웠던 메콩강변.

아름다웠던 강변에서 기념사진도 남기고.
점심으로는 생선구이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저 큼직한 생선구이는 한마리에 15,000낍. 생각보다는 비쌌다. 대신 다른 고기 꼬치들은 5,000낍으로 싼 편이다. 실은 생선도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건 아니다. 다만 라오스 물가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려 우리가 비싸다고 느낀 것 뿐.
각종 꼬치들과 소시지기 진열되어 있는 모습.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 나온 생선구이. 무슨 생선인진 모르겠지만 특이한 맛이나 향 같은 것이 없어 나와 내 친구 모두 무난무난하게 잘 먹었다. 짜지도 않고 간도 적당했던 듯.
돼지꼬치를 시켰더니 큼지막한 비계덩어리 두 조각을 주었다. 향은 기가 막혔는데 이게 족발도 아니라고 비계라니...... 평소게 비계는 그닥 즐겨먹질 않아서 결국엔 먹다 남겼다.
비계구이도 남기고 살짝 배가 아쉬운 듯이 차서 카페에 앉아 시킨 바나나케이크. 확실히 유럽 식민지 영향떄문인가 빵이 가격대비 맛있다. 종류도 엄청 다양하고. 망고케이크, 파인애플케이크, 바나나 케이크를 먹어봤지만 바나나가 맛도 제일 살아있고 촉촉해서 가장 맛있었다.

이렇게 케이크와 길거리 과일쉐이크까지 마시고 나니 배는 포화상태. 우리는 오전에 예약했던 대로 1시 반까지 여행사 앞에 도착. 우리와 같이 투어를 예약한 외국인들과 미니밴을 타고 꽝시폭포로 향했다. 사진속으로 질리지도 않게 보아온 신비한 물색의 폭포. 그 사진 속의 장소에 진짜 가게 된다니.

다음 여행기 포스팅은 꽝시폭포와 돌아와서 루앙프라방에서 맞이한 두 번쨰 저녁이야기가 되겠다.




Posted by 강지님
라오스에서의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고 방콕과는 달리 습기찬 날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제 널어둔 빨래는 거의 마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숙소에 남아 있던 수건으로 물을 있는 힘껏 최대한 빼낸 후, 비닐에 따로 넣어 챙겨두었다. 젖은 채로 퀴퀴해지면 안되는데.

그렇게 우리는 짐을 모두 싸서 챙긴 후 비장한(?) 각오로 숙소를 나섰다. 그렇다. 오늘은 바로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날. 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소이긴 했지만, 전에도 언급했듯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기 위해선 험한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좁고 험한 산길 드라이브가 바로 그것. 그리고 나와 친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좀 더 비장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경치가 훨씬 좋다는 오른쪽 자리를 사수해 사진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친구는 멀미가 심한 만큼 비교적 편한 편이라는 앞자리를 사수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니밴을 기다리면서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우리는 2인 1조 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한 명이 짐을 맡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잽싸게 자리를 잡자고 말이다.

늘 그래왔듯 예정된 시간보다 십분에서 십오분 정도 늦게 픽업차량이 우릴 터미널까지 태워주러 왔다. 근데 이 픽업차량으로 온 버스가 아주 가관이다. 버스의 낡은 정도와 맨 앞에 써있는 일본어로 대략 80년대에 일본에서 쓰이다 이 쪽으로 넘어온 것 같은 차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열악했다. 설마 이걸 타고 계속 루앙프라방까지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다 되었을 정도. 다행히도 버스는 우리를 여러 대의 미니밴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터미널로 추정되는 공터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거기서부터는 그냥 아무 미니밴이나 잡고 티켓을 보여주며 타면 된다. 우리의 2인 1조 플레이는 대성공적이여서, 각각 미니밴 맨 앞줄 왼쪽 창가와 가운데 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내가 고대했던 오른쪽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보니 오른쪽 자리의 특성상 보조의자에 앉게 되기 떄문에, 장기간 험한 길을 달릴 경우 머리받침이 없어 상당히 불편할 뻔했다.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 앉은 자만의 특권으로 왼쪽, 오른쪽 경치를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된 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길고긴 루앙프라방행(行)은 그야말로 '익스트림'했다. 차선도 없고, 포장상태도 좋지 않은 길이 끝없이 굽이굽이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산속마을 아이들도 튀어나오고, 물소떼도 튀어나오는 그런 길이었다. 여행지에서만은 매우 낙천적인 내가 다 긴장해서 저러다 어린 아이들이 차에 치이면 어쩌나, 이런 산 속 험한 길에서 저렇게까지 속력을 내도 되나 하고 걱정했을 정도.

하지만 덕분에 정말 색다른 라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평지도 전혀 없는 곳에 집들이 있는 걸 보며 신기해하고, 아이들이 갓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모습도 보고,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풀을 말려 지붕으로 얹고 진흙으로 벽을 바르는 전통 가옥들도 실컷 보고, 볕이 좋은 곳에 아낙들이 풀을 탁탁 치며 말리는 장면도 심심찮게 목격하고, 무엇보다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산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결코 편한 여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라오스를 여행하는 이라면 꼭 산길을 버스로 이동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지 말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그 안 가득 스쳐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담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금이나마 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으니까. 여행지의 성격을 띄고 조금씩 변해가는 큰 마을들보다 덜 때묻고, 더 독특한 모습들을 볼 수 있으니까.

여행사까지 걸어가는 길에 유진이.

중간에 내려준 휴게소에서 사먹은 바나나칩. 한국에서 안주로 접할 수 있는 말린 바나나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오히려 생생 고구마칩과 좀 더 비슷한?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술안주' 삼고 싶어지는 맛이라는 거.
중간에 멈춘 휴게소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이것보다 말도 안되게 더 멋있는 모습들이 이동하는 내내 계속 펼쳐졌는데, 찍을 때마다 흔들려서 제대로 남긴 게 단 하나도 없어서 아쉽다. 흐엉.
요즘의 겨울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저 진한 하늘색. 저 진한 파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정말.
중간에 내린 휴게소에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던 한 아저씨.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기대어져 있는 나무 위를 걸어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밑은 구해줄 길 없는 낭떠러지던데....... 무섭지도 않나요 아저씨!

버스는 예상시간을 훨씬 넘겨 한 세시 반 정도에 루앙프라방 터미널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 중심지에서부터 몇키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뚝뚝을 타고 가야한다. 우리는 그냥 다른 외국인들이 짐을 싣고 있던 한 뚝뚝으로 걸어가 합류해도 좋냐고 물어본 다음 탔다. 가격은 뚝뚝에 몇명이 타든 상관없이 한사람당 10,000낍.

루앙프라방 중심지에 내린 이후 우리는 먼저 조마베이커리를 찾았다. 조마베이커리 옆 골목으로 싸고 괜찮은 숙소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작년보다 다소 오른 가격들. 두세군데를 찍어 방을 둘러본 뒤에 방도 나름 깔끔하고, 비교적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WIFI가 되었던 숙소를 선택했다. 가격은 1박에 한사람당 100,000낍. 우리는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빨리 구경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우리는 해자 지기 전에 서둘러 푸시 산에 올라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푸시산 입구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호객행위인가 싶어서 그냥 무시하며 걸어갔는데 알고보니 방비엥에서 만났었던 Scott이었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 우리 셋은 다시 만나서 신기하다며 같이 푸시산을 올랐다. 어제 방비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잔뜩 들려주면서.

푸시산 올라가는 길에 아래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입장료는 20,000낍.
푸시산에서 내려다 본 루앙프라방의 모습. 프랑스 식민지였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탓일까. 흰 벽에 빨간 지붕을 한 모습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유럽의 한 마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이 사진! 얼핏 보면 동남아의 한 마을이라고 보기 정말 어렵지 않은가.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모습.
산을 뒤로 하고 그 사이로 푸른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지는. 일몰보다도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 푸시산은 필수 코스인 것 같다.

산 정상에는 이런 금빛 탑도 있다.

그래도 일몰을 보러 왔으니 봐주어야겠지.
일몰을 볼 수 있는 쪽에는 진작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사진 속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동양인 여행객 찾기가 의외로 힘든 것이 동남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백인 아이들이 어쩜 저리도 많은지. 그리고 얘기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동남아만 적어도 한두달은 여행하는 장기여행자들.
푸시산의 일몰. 메콩강과 산 뒤로 넘어가는 해의 모습이 꽤 멋지긴 했는데, 사진 거의 정중앙에 있는 저 전신주,그래 너! 너만 없으면 훨씬 멋진 모습이었을텐데..
전신주를 사이드로 치워버리니 더 좋네.
해가 거의 넘어가면서 하늘이 파스텔톤 남빛으로 변해가는 모습.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춥고 어두운 밤의 시간이 오기 직전, 주황색으로 잠시나마 따뜻하게 물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이.
일몰 자체는 더 웅장하고 멋질 건 딱히 없었다. 다만 산수를 함께 만끽할 수 있어서 좋은 그림이었다고나 할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바로 야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 저녁 다섯시경부터 열시까지 도로에 야시장이 열린다. 이 시간동안 차량의 출입은 통제된다. 우리가 푸시산에 오를 즈음에는 벌써 몇몇 상인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나열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산을 내려오니 야시장은 이미 활기를 찾은 상태였다. 나와 친구는 푸시산을 내려온 이후 Scott과 헤어져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먹은 거라곤 휴게소에서 사서 나눠먹은 오레오와 바나나칩 조금, 귤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야시장의 모습들, 공개합니다.
푸시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야시장의 모습들. 파란색과 빨간색과 같은 원색의 천막들이 한층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one of the best pic ever. 뒷쪽 사원에서 나오는 조명과 그 양옆으로 펼쳐진 야시장의 불빛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채식부페. 접시에 원하는 만큼의 음식을 덜어먹을 수 있다. 한 접시에 10,000낍. 단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페'와 달리 음식을 딱 한 번만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담아내야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피자헛 샐러드바 이용하던 신공으로 열심히 담았다.
우리가 가득 담아낸 접시의 모습. 여기에 스프링롤 하나를 추가했다(1,000낍). 정말 수상해 보이는 것 딱 두가지를 제외하고 다 담았는데 모든 음식이 다 입에 맞았다. 나물반찬이나 밥을 즐겨 먹는 게 비슷해서 그런가, 흔히들 말하는 동남아 특유의 향도 없고 정말 맛있었다. 싸고 든든한 식사.
한 접시를 나눠먹으니 배가 아쉬운 듯이 차서 쉐이크를 사서 마시기로 했다. 친구는 과일쉐이크를, 나는 커피쉐이크를 마셨다. 한잔에 5,000낍. 근데 이 커피쉐이크가 너무나도 맛있는 거다. 쓰디쓰게 우려낸 라오스식 커피에 얼음과 연유를 넣고 갈아내서, 달달하면서도 그 단맛이 과하지 않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맛있는 쉐이크를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니, 나같은 배낭여행객에게 이런 천국이 또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의 국화빵 같은 것이 라오스에도 있었다. 우리끼리 명하길, '라오스식 코코넛 풀빵'. 호기심에 한 번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친구가 사서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안나는데 한봉지 5개에 4천낍 정도였던 것 같다. 달달하면서도 부들부들 촉촉하고, 코코넛 향이 입 안 가득 번지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방콕 짜뚜짝 주말시장에서 먹었던 코코넛 아이스크림에 이은 코코넛의 재발견이었다.
야시장의 모습. 각종 기념품들을 판매하는데 흥정은 기본이다. 30%는 기본이고 최대 50%까지도 깎아봤다. 흥정에 앞서 자신의 지불의사가격의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이 흥정의 기본 중의 기본.
특히 스카프가 가격 대비 예쁜 디자인도 많고 질이 좋으니 구입하면 좋다. 다른 티셔츠나 가방 같은 경우 한국에서까지 착용하려면 다소 촌스럽거나 기념품스러운 감이 적잖아 있는데, 스카프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지하상가 가격으로 훨씬 괜찮은 걸 구입할 수 있다(!) 나도 도톰하고 굵은 실로 짜낸 목도리 하나와 얇은 실크스카프 한 장을 구입했다.
라오스식 그림. 하나쯤 사고 싶었는데 의외로 비싸더라구.
각종 가방 등을 걸어놓고 파는 노점.

이 날 엄청 슬펐던 일 하나. 바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터키에 다녀오면서 사다준 손바닥만한 크기의 천지갑이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흘린 것이 분명했다. 안에는 우리나라돈 약 7만원 정도의 낍과 체크카드가 있었다. 놀라서 한참동안 친구와 시장을 돌며 지갑을 찾았지만 헛수고. 국제전화로 체크카드만 얼른 정지해 두었다. 한화 7만원 정도면 라오스에서 꽤 큰돈인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에서 그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체크카드보다 더 중요한 신용카드는 숙소에 있었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돈을 지갑에 전부 넣어두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보관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회 결과 체크카드에서 돈도 빠져나가지 않았고. 여행을 숱하게 했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건 또 처음이어서 조금 놀라우면서도 황당했달까.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걸. 아직 남은 일정을 즐길 정도의 돈은 충분히 남아 있었으므로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 계속 곱씹어 봤자 병만 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 날 외출하면서 가지고 나온 돈 중 가방에 남아있던 돈으로 오징어를 샀다. 오징어 씹고 삼키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지갑에 대한 미련 또한 삼켜 넘기려고... 방콕 카오산에서 처음 보고 신기했었는데, 라오스에서도 똑같이 말린 오징어를 팔고 있더라. 두 마리에 4,000낍.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쪼그라드는 오징어의 모습. 고추장과 마요네즈 콤비가 그리워지는 순간.
여기에 비어라오까지 큰 걸로 한 병 사서 친구와 숙소에서 작은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조마베이커리 옆 게스트하우스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

우리는 비어라오와 오징어, 낮에 먹다 남긴 바나나칩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함께 여행하며 있어왔던 일들과, 각자 한국과 홍콩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술 한잔한잔에 오고갔다. 와이파이가 되었기 떄문에 내 아이폰을 통해서 중요한 메일 등을 체크해 보기도 하고. 다음날 어떻게 돌아다닐지 이야기를 하다가 우선 아침에 탁밧 행렬을 보기로 했다. 탁밧 행렬이란 스님들이 일렬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밥이나 과일을 얻는 핼렬을 말하는데, 해가 뜰 무렵에 하기 떄문에 행렬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잔을 비우고 씻은 다음 잠을 청했다. 햇님보다 더 부지런히 일어나기 위해서.





Posted by 강지님

버스 안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르고 너무나도 편히 잘 자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꺠우길래 영문도 모르고 나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에 한 번 내리고 그 다음에 국경 넘기 전 여권을 제출해 라오스 내에서 이동하는 버스표를 받고 아침식사를 하고, 국경에서 태국 출국카드를 제시하고 출국도장을 찍고, 우정의 다리를 건너 라오스 국경에서 입국도장을 찍었던 것 같다. 중간에 내릴 때에는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방콕보다 훨씬 북쪽이어서 그런가 반팔 반바지였더라면 그야말로 동남아에서 얼어죽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날 뻔했다. 얇은 긴바지에 반팔, 그 위에 긴팔 가디건을 걸친 차림이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다. 자고 일어난 직후여서 더 춥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고. 나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이동 루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긴팔 긴바지는 무조건 챙기시길. 한국에 두고 온 후디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아침에 태국쪽 국경에서 내려서 사먹은 아침식사. 커피나 티 한 잔에 토스트 두 개가 40밧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이날과 다음날은 여행경비를 적어둔 종이를 잃어버려 정확한 금액을 알 길이 없다) 거의 열두시간을 아무것도 안먹고 있다가 먹어서 그런지 토스트도 술술 잘 넘어가더라. 커피는 동남아식 커피, 로부스타종 커피답게 엄청 썼다. 내가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에 샷추가 해서 먹거나 물 적게 타서 진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인데..... 로부스타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연유가 필요해!

아침식사를 한 곳은 이렇게 나름 운치가 있는 강변. 아침 물안개가 피어올라 강 건너편의 라오스 땅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 곳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안내자에게 건네받은 라오스 입국카드를 작성했다.

아침식사를 한 후에는 Friendship Bridge라고 불리는 다리를 타고 강을 건너 라오스 국경에 도착했다. 라오스 비자가 필요한 백인들은 길게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한국인들은 15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말씀. 너무나도 간단하게 라오스 입국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역시 추위에 떨며 비엔티엔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탔고, 비엔티엔에 도착해서는 바로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이동해서 한시간 가량 방비엥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외국인이 1달러가 몇 낍(라오스의 화폐단위)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어서 1달러당 약 8천낍 정도라고 답변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쪽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프랑스 퀘벡주에서 온 노부부 한 쌍과(그래서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역시 캐나다 출신이나 영어사용자이고, 현재는 일본 내의 미쯔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Scott이란 아저씨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치앙마이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서로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The more you know, the more you find out that you do not know.'
정말 그렇다. 말 그대로,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을 아무리 다녀도,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많이 남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떄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방대함에 우쭐함을 꺾고, 보다 더 많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한 시간을 기다려 타게 된 방비엥행 버스는 먼지투성이 길을 달려 예상보다 빠른 3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우릴 방비엥의 길거리에 내려주었다.

이것은 방비엥 가는 길 중간에 점심을 사 먹으라고 내려준 곳에서 사먹은 치킨샌드위치. 라오스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영향으로 가격대비 훌륭한 바게트를 구워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사 먹어 보았다. 한 개에 10,000낍이었지만 아직 낍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달러로 계산. 달러로 사니 두 개에 3달러랜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싸잖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치킨이 좀 짜고 마요네즈가 뭉쳐있긴 했지만 빵 자체가 바삭하고 맛있어서 한 개를 금방 뚝딱했다.

방비엥 길거리에 도착해서는 아까 버스를 기다리며 함께 이야기했던 Scott과 셋이서 숙소를 함께 찾아보자고 얘기가 되었다. 일단 우리는 근처 환전소 겸 여행사에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환전하고(1달러당 7,900낍으로 통상 적용되는 1$=8,000낍보다는 좋지 않은 환율이었지만, 그래봤자 겨우 몇 원, 몇십원 차이였기에 쿨하게 환전했다),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미니밴을 예매했다. 미니밴은 100,000낍. Scott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가는 버스를, 우리는 이틀 뒤 아침 9시에 출발하는 미니밴으로 예약했다. 나와 유진이는 추가로 다음날을 위해 카약킹 투어를 예약했다. Riverside Tour란 여행사에서.
그리고 내가 프린트해 온 방비엥 정보와 론리플래닛 숙소를 찾아보면서 괜찮다 싶어 결정한 Le Jardin Organique란 숙소를 조금 헤맨 끝에 찾아내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나와 친구는 한 방을 쓰고, Scott은 옆방 투숙객이 되었다.

버스로 열두시간이 넘도록 이동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씻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어찌나 개운하고 시원하던지. 옷도 갈아입고, 렌즈도 끼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다시 Scott과 만나서 셋이서 방비엥을 조금 걸어 구경해 보았다.

평화로운 강변 풍경. 우리나라의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산들과는 달리 경사가 매우 가파른 돌산들.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들도 많다고 하고.

정말 저 어딘가에는 신선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방비엥이 변했네, 어쩌네 해도 강 남쪽 부근만큼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하더라.
강 위에 떠있는 보트들.
물에 비친 산까지,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고 조용했던 방비엥의 길거리.

걸어다니다가 출출하기도 하고, 맛있는 걸 한번 더 맛보고 싶기도 해서 친구와 로띠를 사먹었다. Scott은 자기는 달달한 것이 싫다며 거절했지만 결국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한 입 먹어보곤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일반 바나나보다 훨씬 더 샛노란 몽키바나나를 송송 썰어놓은 다음,
뜨거운 철판 위에 기름 붓고 마가린 넣고 얇게 펼쳐놓은 밀가루 반죽에 바나나 넣고 굽다가
꺼낸 뒤 먹기 좋게 썰어주고
썰린 후의 모습
그 위에는 달달하도록 연유를 마구마구 뿌려준다. 방비엥의 로띠는 한 개에 10,000낍. 태국에서의 로띠보단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더 크고 푸짐하기도 해서 따지고 보면 더 비싼 것도 아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 강변의 일몰은 그야말로 환상적.
보기엔 너무나도 위태위태한 다리가 강변 곳곳에 있다.


해도 지기 시작하고 슬슬 배고파져서 셋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 추천이라고 뜬 Organic Farm Cafe에 가서 먹기로 결정. Scott은 치킨볶음밥고 비어라오 한병을, 유진이와 나는 각각 그린커리와 노란커리, 그리고 멀베리 주스 두 잔을 주문하기로 했다.

이것이 멀베리 주스. 분명 똑같이 주문했는데 나는 작은 잔에, 유진이는 큰 잔에 주길래 황당했다. 내가 this is so unfair!라고 하니 Scott이 that's life라고 했다. hmm...
유진이의 그린커리. 커리야채볶음이 적합한 한국식 표현일듯. 맛있었으나 밥도 주문할 걸 하는 아쉬움이.
이것이 나의 커리. 워낙 묽어서 밥이랑 같이 먹지 않아도 curry soup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니 괜찮았다. 야채들이 아낌없이 팍팍 들어가 있다. 이게 또 은근 배불러서 결국 먹다 남겼다는 거. 
가격은 멀베리 주스가 8,000낍, 내 노란커리가 17,000낍이었던 것으로 기억.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Scott은 일본 나가사키에 살면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동양 문화에 관심도 많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절친한 한국인 친구가 여럿 있고 한국도 몇 번 가 보았다며 한국의 문화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난 뒤 피곤해서 이젠 쉬어야 겠다는 Scot과 명함을 받은 뒤 헤어졌다. 우리는 아직 쉬기엔 너무 들떠있었으므로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하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Bucket Bar. Bucket Bar가 총 두 군데에 있는데 하나는 카약킹/튜빙 하다 중간지점에 bar들 밀집한 지역에 있고, 다른 하나는 강변이 아닌 숙소, 여행사 밀집 구역에 있다. 강변 쪽은 밤에 외국인들 마약도 많이 하고 매우 시끄럽다고 하는데, 이 쪽은 다들 건전하게 놀고 있었다. 저렇게 쿠션이 있는 편안 좌식자리에 앉아 얘기하고, 가운데 비치된 pool table에서 bucket내기 당구하고.
우리가 시킨 bucket을 들고 사진 한 장. 이곳의 이름은 바로 이 bucket에 칵테일을 가득 담아 팔기 떄문! 이 날 총 두 개를 시켰는데 둘 다 정말 맛있었다. 특히 레드불과 콜라가 들어간 칵테일은 정말 맛있었음. 꼭 시도해 보길 바란다! 적당히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한 수다를 떨었다. 남들 눈치보지 않고 크게 웃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선선한 저녁바람 맞으며 편히 앉아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국엔 이런 바 하나 차릴 수 없는거야?
이렇게 라오스스러운 등도 달려 있다는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한 백인 남자가 자신을 핀란드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너네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그렇구나 하면서 요즘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을 묻고 가더라. 이후에 그 쪽 테이블 사람들이 우리에게 왔던 핀란드 친구도 가고 인원이 적어지면서 우리에게 조인해도 되냐면서 왔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를 포함해서 여섯명이서 신나게 이야기하며 놀았다. 우리에게 온 외국인 네명 중 두명이 무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멀리서 우릴 보고 한국인일 거라며 미리 친구를 시켜 물어본 거란다. 한 명은 영어유치원 교사고 다른 한명은 대학에서 공학을 가르치는 강사라고 했다. 나머지 둘은 독일에서 온 남자 한명과 미국에서 온 여자애 한 명. 워낙 다들 입담이 좋아서 나와 친구는 실컷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신개념의 바에서 더욱 신개념의 칵테일도 맛보고, 간만에 친구와 girls talk도 즐기고, 외국인 친구들과 유쾌하게 수다도 떨고. 길고 추웠던 버스에서의 시간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즐거운 밤이었다. 이 떄 까지만 해도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지 못한채....









Posted by 강지님

방콕에서의 두번째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부터 모닝콜 맞춰두고 재빨리 씻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늘 이렇게 '솔선수범' 형이 된다. 시간절약을 위해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게 된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여유부리면서 준비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다. 숙소만 나가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또는 이미 보았던 것들이라도 이전과는 달라져있는 모습들이 사방에 널렸으니까. 주어진 시간동안 더 많이 보고 느껴야겠다는 욕심에 서두르게 된다.

여행지에서 달라지는 모습 두번째. 바로 아침을 꼭 챙겨먹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번이라도 더 현지 음식을 즐겨볼 수 있으니까. 이 날도 한국인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하다는 카오산 근처 국수집 '나이쏘이'를 찾았다.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가깝다는 점도 한 몫 했고.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는데 태국어는 모르겠고, 영어메뉴는 너무나도 간략해서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난 '갈비국수'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로또를 사보는 심정으로 가게 주인에게 국수 하나 달라고 하니까 밑에 사진에 있는 국수를 알아서 주더라. 고기 질감이 딱 그 말로만 듣던 '갈비국수'인듯.
그렇게 무사히 주문 완료한 국수 한 그릇을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사진 속 국수가 바로 그 갈비국수. 국물이 조금 짰던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따뜻한 물 딱 반컵만 부어 먹었더라면 정말 최고였을 뻔했다. 그 외엔 내가 잘 먹지도 못하는 '고수'도 빼달라고 했으니 입에 안맞을 것은 전혀 없었다. 고기국물도 진하고 구수했고, 갈비살도 제대로 뜯어져서 맛있었고, 쌀국수도 좋았고. 아침식사로 든든하고 따뜻해서 만족스러웠던 국수 한 그릇.

그리고 나서는 '왓 아룬'을 가보기 위해 수상버스를 타기로 결정. 카오산 근처 정류장에서 이십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수상버스에 탈 수 있었다. 가격은 겨우 14밧! (참고로 20밧이 약 800원 정도)
수상버스에 탑승한 나. 앉은 자리가 역광이어서 실루엣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탔다는 증거로 꼭 남겨야 직성이 풀린달까. 승차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배도 그다지 좋지 않지만 배의 흔들림이 없고, 매우 빨라서 가격대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강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우 시원하다는 점이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방콕의 강변을 구경하는 맛이란. 곳곳에 멋진 건물들과 유적들이 많아서 마치 오픈된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방콕을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꼭 수상버스를 타볼것. 짧은 시간이나마 강변 크루즈 즐기는 기분이었다. 하하.

수상버스를 타고 가면서 만난 건물 하나.

건물 둘. 이것이 바로 왓아룬! 우리 배가 서는 곳의 강 반대편에 있어서 내리면 안되는 줄 알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강을 따라 가는 배 외에 강을 건너는 배가 따로 있었다는 거. 게다가 강을 건너는 배는 더 저렴했다. 나처럼 카오산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왓 아룬을 가시려는 분은 왓아룬 건너편 정류장서 내린 후 그 정류장에서 강을 건너는 버스를 새로 타시길. 우리는 결국 오전에 왓아룬을 먼저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몇 정류장 더 가면 있는 곳에서 내려 인근 BTS역에서 BTS를 타고 짜뚜짝 주말시장을 먼저 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즐겁게 수상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우리는 BTS역이 바로 옆에 있는 Saphan Taksin선착장에서 내려 BTS를 타고 짜뚜짝 주말시장을 가기 위해 Mochit역까지 이동했다. 가격은 40밧. 스카이트레인은 확실히 방콕 물가대비 비싼 편이었다.

Mochit역에서 내려 역 통로에서 바라본 도로의 모습,. 매우 colorful하지 않은가? 방콕엔 정말이지 각양각색의 택시들이 도로를 수놓고 있다. 사진에 보라색 택시가 나오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쉽다. 다른 색의 택시들은 다 있는데 왜!

그렇게 해서 도착한 짜뚜짝 주말시장. 위의 사진이 바로 시장의 지도이다. 지도는 나름 계획적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길 찾기 쉬워보이게 나와 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 복잡하다. 다들 하는 말이 눈에 밟히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야 한다고. 이유인즉 너무 복잡해서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시장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째 먹는 사진밖에 없다... 어라?

더운 날씨를 이겨내고자 여기에서 땡모빤(수박주스) 한 잔 사먹었다. 씨까지 하나하나 발라낸 수박을 듬뿍 넣어 갈아주는 시원한 주스는 겨우 25밧. 아 정말 태국서 살면 먹고 다니는 게 싸서 살 맛 나겠다.

볼 때 마다 신기한, 계란도 아니고 '메추리알' 후라이. 그 조그만 메추리알을 하나하나 직접 까서 후라이를 만든다. 귀찮지도 않나.... 이 사진을 보니까 사먹어 볼 걸 하는 후회가 된다.

너무 신기했던 이것! 바로 아이스케키. (태국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색색의 주스를 얼려서 만든다. 주문하면 하나를 뽑아 물 속에 넣어서 틀에서 분리한 후 꺼내서 건네준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파란색 등등 색이 너무 예뻤다. 궁금한 마음에 하나 사 먹어 보기로. 가격도 겨우 4밧!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먹어보는 게 어디야!

방콕에 가기 전, 고갱이 꼭 먹어보라며 추천했던 코코넛 아이스크림. 하나에 25밧. 이곳은 특징이 토핑을 세 가지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무슨 레드망고도 아니고....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것은 파인애플 절임, 바나나, 그리고 찹쌀밥. 파인애플 절임은 매우 맛없어서 안먹고 남겨두었지만 나머지는 너무 맛있었다. 코코넛주스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 아이스크림은 느끼하지도 않고 상큼했다. 코코넛에서 이런 맛도 날 줄은 몰랐다. 조금은 의외의 토핑같은 찹쌀밥도 묘하게 달달한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는 것. 우유에 밥말아 먹는 등의 행위를 혐오(?)하는 나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강추!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었어서 가다가 또 사먹은 두 번째 코코넛 아이스크림. 이 곳은 뭔가 더 '코코넛스럽다'. 진짜 코코넛 껍질에 아이스크림을 담아주어서 시각적인 면도 제대로 충족시켜 주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커피아저씨. 커피를 무슨 디켄팅 하듯 다루는데 솜씨가 장난 아니다. 위의 사진 두 장만 봐도 이게 얼마나 진풍경인지 알 수 있겠지요.

먹는 것 말고도 다른 물건들도 열심히 구경했다. 이 날 시장에서 귀걸이 세개와 남은 일정동안 항상 내 옆에 있어준 가방을 하나 샀다. 크로스로 매는 천가방인데 물나염 프린트가 너무 독특하고 예뻐서 보는 순간 지름신 강림. 190밧 부르는거 가격 흥정해서 150밧에 구입할 수 있었다.

신나게 시장 구경을 하고 나서는 원래 오전에 가고자 했던 사원, '왓 아룬'으로 이동. 왓 아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140밧이 나와서 둘이 사이좋게 70밧씩 나눠서 냈다. 왓 아룬의 입장료는 50밧. 입장료를 지불하면 티켓과 함께 자그마한 부직포 가방을 기념품이라고 준다.

지금부터 왓 아룬의 사진들. 아주 짧은 코멘트들 제외하곤 역시 사진 위주로 갑니다.

저 세 개의 탑이 다 나오게 찍기 매우 힘들다. 뒷걸음질 여러번 치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겨우 담아낸 사진.

택시들만큼이나 현란한 향초들. 방콕에 대한 내 지워지지 않을 인상은 colorful한 도시라는 것. 전통적 사원부터 현대적인 거리까지 모두.
소승불교 사원들은 화려한 장식이 많다. 부처들의 인상도 석굴암에 있는 부처와 같이 인자한 맛이 없이 좀 요괴같이 생기기도 했고.
사원 입구에 이렇게 돈을 매달아 놓았다.
힌두교같은 이미지.
매우 가파른 탑. 계단도 경사가 엄청나서 올라갈 때 손잡이를 꼭 붇잡고 한걸음씩 겨우 떼어가며 올랐다 .내려올 것이 더 걱정이었다는.
탑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
탑 위에서 바라본 차오프라야 강변쪽 풍경.
사원쪽 풍경을 내려다 본 모습.
사진으로 짐작할 수 있으려나, 저 계단의 경사를! 내려갈 때 너무나도 무서워서 옆의 손잡이를 무슨 생명줄인 마냥 양 손으로 꼬옥 붙잡고 거의 앉다시피 해서 내려갔다.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서 있는데 무슨 절벽같아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니 온몸에 땀이 나 있었던 기억도 추가.

왓 아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스님에게 머리를 맞는 것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것. 사원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보니 주황색 천을 입은 스님이 신자들에게 가느다란 나뭇가지 묶음으로 머리를 때리며 물을 뿌리고 있었다.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는데 스님이 손짓을 하며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 주신거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이거 사진을 위해 한 번 더 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뭣하고. 기억 속에나마 생생히 남겨두어야지.

왓 아룬을 구경하고 나서는 강을 건너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넌 후, 왕궁 쪽에서부터 카오산로드까지 쭈욱 걸어갔다.  왕궁 주변으로 카오산까지 국방부 건물 등 각종 중요 건물들이 있어서 걸어가면서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가는 길은 차도 썡썡 다니고 사람도 많고 꽤 복잡한 길이었지만.
선착장 주변에서 발견한 신개념 먹을거리, 바로 구운 바나나!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하나 질러보기로 했다. 가격은 겨우 5밧. 먹어보니 이것은 그냥 시큼한 군고구마 맛. 바나나 고유의 맛은 안느껴지고 웬 고구마가 여기 계십니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왕궁 근처에서 본 길거리 음식. 먹어보진 않았지만 색이 예뻐서 찰칵.

한 이십분 정도 땡볕 아래에서 걸은 끝에 카오산에 도착했다. 카오산에 얼마나 오래 있었다고 도착하니 무슨 집 온 것처럼 편한 기분이 들었다. 배낭여행객에게 카오산이 주는 묘한 기분. 방콕을 여행했던 배낭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카오산이 내 집 같단 생각을 해 보았을 거다. 그 곳에선 내가 현지인이 아닌 여행자라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주전부리는 중간중간 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질 못해서 근처 노천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라오스까지 가는 버스가 카오산으로 5시 반에 픽업하러 온다고 했으니, 그 시간 이후로는 다음날 라오스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실상 밥 한 끼 제대로 먹기 힘들겠단 생각도 있어서 겸사겸사 먹은 점심 겸 저녁.

팟타이와...
새우볶음밥. 여기에 치앙 맥주 두 병 주문해서 먹었다. 맛은 무난무난.

식사를 마친 이후 시간이 좀 남길래 카오산 곳곳에 있는 저렴한 노천마사지가게에 들어가 발마사지를 받았다. 삼십분에 100밧. 온종일 걸어다닌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는 제때에 맞춰 짐을 맡겨둔 숙소에 도착했다. 픽업차량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면서 맡겨둔 짐도 찾고, 옆의 편의점에서 모기퇴치제와 물, 샴푸 등을 구입했다. 근데 숙소로 픽업온다는 차량이 사십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거다. 물어물어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 보려는 순간에 도착한 픽업차량. 아니 왜이렇게 늦게 오냐구요. 이러다 라오스 구경도 못해보는 줄 알았잖아요.

픽업차량은 다른 숙소를 몇 군데 더 들려서 다른 외국인들도 픽업한 후에 우리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줬다. 그 곳에서 여행사를 통해 받은 버스예약표를 진짜 버스티켓으로 바꾸고 7시까지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죄다 백인들. 동양인은 우리를 포함 대여섯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억양으로도 딱 미국인 티가 나는 아저씨가 라오스에 여러 번 가본듯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국경 넘는 과정을 신이 나서 설명하는 걸 귀동냥으로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7시에 도착한 라오스행 버스. 맨 앞자리가 편하다고 해서 노리려고 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선수를 친 상태에서 좌석도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우리가 잡은 자리는 맨 뒷자리. 근데 맨 뒷자리가 의외로 명당이더라. 의자를 뒤로 젖히는 것도 눈치 보이지 않고, 특히 우리가 탔을 떄에는 운좋게도 뒷자리 다섯석에 네명밖에 앉질 않아서 보다 여유있게 앉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방콕에서 버스로 라오스 가는 사람들에게 2층 맨 뒷자리도 강력추천. 심지어 우리는 라오스에서 다시 버스로 방콕 넘어올 떄에도 뒷자리에 앉아서 왔다.

버스는 시끄러울 정도로 크케 영화 <아이언맨>을 두어시간 정도 틀어주다가, 나중엔 불을 끄고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양쪽 귀를 휴지로 틀어막고, 한국에서 가져온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후 남들보다 빨리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드디어 국경이겠구나! 드디어 내일이면 그토록 꿈꿔오던 라오스 땅을 밟게 될 생각을 하니 버스에서 하룻밤 꼬박 자며 이동하는 것도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다음부터는 라오스에서의 여행기가 시작된다 ! 빠바밤. :)


------------------------------------------------------------------------------------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리는 이날의 여행경비 엑셀스프레드시트 캡쳐이미지

Posted by 강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