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nge in Japan/in Osaka2011. 3. 15. 20:44


지진 발생한 당일인가 그 다음날인가 사람들한테 내 안전함을 알릴 겸 내가 겪은 지진에 대해서, 그리고 느낀 점에 대해서 싸이 다이어리에 썼었다. 그래서 굳이 블로그에까지 지진 이야기를 적으려고 하진 않았었는데, 오늘은 좀 적어야겠다.

도쿄에 있는 어학원을 다니면서 내년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사촌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적어도 다음주까지는 한국에 있을 거라고 한다.

나름 도쿄도 진도 5의 지진을 겪고, 첫 지진 발생 당일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었고, 그 이후로도 여진이 여러 차례 계속되었었고, 지금은 정전사태를 대비해 구역별 정전을 계획하고 있는 등 지진 피해가 적지 않은 곳이긴 하다. (물론 토호쿠 지역이 입은 피해하고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 하지만 동경대와의 연합세미나때 만났던 애들도 다 크게 이상이 없다고 하고, 휴교를 하거나 휴직을 하는 곳도 없다고 해서 그냥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다. 사촌언니마저도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이참에 나 있는 오사카로 놀러갈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오늘 바로 새벽에 공항 가서 남은 표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댄다. 

사촌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쿄 시민들은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보다는 좀 더 동요하고 있는 듯 했다. 
우선 사촌언니 알바가 짤렸댄다. 한국식당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된 모양이던데, 하루 일하고 그만두게 되었단다. 이유인 즉슨 사람들이 하도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재료가 없어 당분간 식당 운영이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랜다. 다시 정상화되면 연락을 주겠다고는 했는데 큰 기대는 안하는 듯 했다.
그래서 진짜 사재기가 이루어지고 있냐고 물으니까 그렇댄다. 슈퍼에 장을 보러 가면 남아있는 상품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물을 사두질 않았는데, 그럼 그냥 수돗물을 끓여 먹으려고 해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당분간은 수돗물의 방사능 수치가 놓을 거라고 해서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어학원 학생들의 대부분이 걱정하는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귀국해 버려서 학원은 당분간 방학이라고 했다. 알바도 그만두게 되고, 학원도 쉬고, 같이 지내던 사람들도 반 이상이 사라지고 하니 언니도 꽤 흔들렸던 모양이다. 결국 지금 이시간은 언니도 한국. 

게다가 어제는 (평소같으면 제때 일처리도 못하고 어느 학생이 어느 시기에 파견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대외협력본부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일본에 파견된/파견 예정인 학생들에 한해서 이번 지진으로 인해 교환학생 수학신청을 취소해도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번에 다시 교환학생 파견을 신청해도 아무런 불이익 없이 선발해 주겠다며 취소를 원하는 사람들은 취소원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 절차마저도 특별히 매우 간단하게 해 주겠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나처럼 취소할 생각이 없는 학생들에겐 별 상관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메일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기분 매우 이상해진다. 마치 내가 해서는 안될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뭐 주변에서 이래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이제 이 곳 오사카에서의 생활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고, 그간 너무 주변만 돌아다니고 각종 명소는 구경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남은 보름동안은 돈 안아끼고 실컷 돌아다니고 먹고 즐길 예정이다. 게다가 이 곳 오사카는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다. 뉴스에서 계속 보여주는 피해현장의 모습은 마치 딴 나라의 이야기인 것처럼.
오히려 일본에선 지금이 한창 관광시즌인지 이 곳 오사카는 요즘 국내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일본인 관광객들로 거리가 넘쳐난다. 평소같으면 꽤 한산할 거리도 일본어로 된 오사카 관광책자를 들고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동네 마트나 시장도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고, 가게 선반마다 물건들이 넘쳐난다. 원자력 발전소 폭파에 대해서도 이곳은 1,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이라 영향이 없을 듯 하다.

오늘은 요시모토 개그공연 극장 앞에서 개그맨들이 토호쿠 지역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을 해 달라고 좌르륵 서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근데 성금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냥 구경하면서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나마 내가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은 때는 성금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을 때. 이런 성금 현장에서조차 지진에 대한 걱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 이 곳 오사카다.

그래도 티비에서 보고, 인터넷에서 보고,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이 그렇다보니 이런 오사카에 있는 나라도 조금은 심란해질 수 밖에 없다. 친구가 바로 한달 전까지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며 지냈던 토호쿠 대학은 4월 말까지 휴교하던데.... 그나마 안전한 이 곳 간사이 지방에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거겠지. 그래도 괜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멈출 수 없다. 왜 하필 내가 나와있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나도 싶고,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손써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우면서도, 혼자 나와있는 유학생으로써는 또 현실적으로 조만간 물가가 오를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한다. 엔화는 원-달러, 엔-달러 환율의 동조화 현상이 오래 지속된 만큼 별로 떨어질 것 같지도 않고....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같은 나라에 있으면서도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아주 조금도 겪지 못한 배부른 자의 고민같아서 좀 죄스럽기까지 하다. (돈에 대한 부담은 있긴 하지만) 마음껏 전기를 쓰고,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밥을 지어 먹는 것 같이 사소한 것들에까지도 감사해지면서. 지금 그들은 이 사소함도 누리지 못하고 악몽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테니.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라는 게 또 확 와닿으면서 씁쓸하다. 에효. 국제전화 카드 하나 사서 가족, 친구들하고 수다떨면 좀 나아지려나. 으아, 빨리 4월이 되어서 본격적인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으면 싶다. 그리고 그 전엔 딴생각 안하게 실컷 놀고 먹고 돌아다녀야지. 미술관이나 콘서트도 좀 다니고. 다음주에 있을 마쯔리도 구경가고. 이번주에는 수족관도 가야겠다! 그리고 우메다 쪽에는 영어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꽤 큰 서점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서 책 좀 몇 권 질러야겠다. 역시 e-book보단 종이냄새 폴폴 나고 눈도 훨씬 편한 paperback이 내 취향. 기운내야지. 괜히 나까지 휩쓸려 버리지 말고. 이 글 보면 힘내라고들 해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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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지님